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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박명진]양분화 구도를 극복하자

입력 | 2005-01-27 18:36:00


새해 들어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양분된 사회갈등을 넘어서 어떻게 사회통합을 이루어 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언론매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사회분열에서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 그중에서도 여권에 있지만 언론 역시 정쟁(政爭)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보다 함께 휘말리면서 분열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동안 언론매체들은 어떤 사안이 등장하든 여야 정쟁, 혹은 진보-보수의 양분된 구도에서 이를 다루었다. 과거사 청산이건,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건, 교육 개혁이건, 신문은 해당지면을 절반으로 갈라 찬반의 시각을 대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TV 방송은 이런 구도를 신문의 몇 배에 달하는 파괴력으로 증폭했다. 특히 심야의 시사토론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사회자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여야 정치인과 함께 의견을 같이하는 교수 혹은 시민단체 인사를 동수로 초청 배치해 설전을 유도한다. 방청객이나 시청자의 전화 참여도 양측 동수로 의견을 취합해 발표한다. 공정성의 실천이 아니라 완전히 사회를 반 토막 내 전쟁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런 포맷에서는 아무리 복잡다단한 사안이라도 포괄적인 동의나 반대가 가능할 뿐, 타협과 조정에 필요한 제3의 관점이 제시될 여지가 없다.

▼언론이 편가르기 조장▼

복잡한 국정에 대해 이런 단순한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절정을 이룬다. 정치권의 정쟁이 제도권 미디어를 거쳐 담론화되면 찬반 양쪽이 인터넷 사이트에 몰려다니며 전쟁을 벌인다. 더욱 더 강한 흑백논리와 막말이 난무한다. 그런 과정에서 신문이나 방송에서 발언을 한 사람들은 험한 공격에 지쳐 만신창이가 되기 십상이다. 웬만한 배짱으로는 소신을 말하기가 겁나 회피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비판과 의견 표명이 어려워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아래에서처럼 언론의 자유가 무제한으로 보장된 적이 우리 역사에 있었느냐고 반문하곤 했다. 얼핏 듣기에는 맞는 말이다. 필화사건으로 감옥이나 정보기관에 끌려간 사람도 없고 인터넷 게시판 같은 곳에 들어가면 누구나 못할 말 없이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구가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군사정권 때 못지않게 언론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웬일일까? 그것은 정권 측에서 주장하듯이 보수 기득권층의 실권에 따른 소외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를 진보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런 느낌을 자주 피력하기 때문이다.

여야간의 극심한 정쟁 상황에서, 집권 여당은 누구의 어떤 발언이든 간에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진보, 혹은 기득권층 어느 한편으로 기계적으로 분류하고 반대편을 비난하고 공격해 왔다. 이에 덩달아 언론매체들은 지지와 반대, 어느 쪽이건 간에 그런 대립구도를 그대로 재생산함으로서 분열을 조장해 온 셈이다.

오늘날처럼 다극화 다원화되어 개인의 정체성 자체도 혼성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그처럼 어느 한쪽으로 선명하게 분류될 수 있는 가치체계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핵 해결 방법에는 정부 방침을 지지해도 과거사 청산 방법에는 반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양극화된 틀로 모든 담론을 재단하려 하니 부당하다는 생각과 함께 언론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제3의 관점 존중해야▼

다행히 올해는 대통령부터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 통합을 지향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 영향인지, 혹은 정치권 자체에서 주요 정쟁 이슈들이 지난해 말을 계기로 소강상태에 들어간 탓인지 신문 기사나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들의 대립적 전선구도가 최근 들어 약화된 기미가 보인다. 기존의 분류 틀을 거부하는 ‘뉴 라이트’ 같은 제3의 입장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대통령부터 자신이 한 발언을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되겠지만 설혹 정치권에 정쟁의 불이 다시 붙더라도 언론매체들이 정쟁을 예전처럼 파괴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박명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