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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色이다]닭의 색은 어둠 몰아내는 하양

입력 | 2005-01-06 16:03:00


새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될 작은 녀석이 닭띠라 올 한 해에 여러 기대를 거는 모양이다. 색채상징에 관심이 많은 내게 닭은 무슨 색에 해당하느냐고 물어온다. 그냥 하양이라고만 설명해 주었더니 별로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다.

12간지(干支)에서 열두 동물은 각각 고유한 방향을 상징하는데, 그 중 닭은 서쪽에 해당한다. 동양의 사상체계인 음양오행설로 보자면 서쪽은 하양을 뜻한다.

하양은 빛을 상징한다. 새벽어둠을 밝히는 청아한 첫닭의 외침처럼 빛은 어둠을 밀어내고 이 세상 모든 색이 존재하도록 만들어 주는 근본이다. 서양에서도 하양을 뜻하는 단어들 가운데 밝음과 어두움을 구별하기 위한 어원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하양은 색이라기보다 모든 색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면서 모든 색을 등장시키는 바탕이 된다. 하양은 눈에 보이는 빛의 파장을 골고루 반사시킨다. 우리 눈이 가진 세 가지 색 수용기, 즉 빨강 초록 파랑의 감지 세포를 모두 자극해야 볼 수 있는 가장 활동적인 색이다. 따라서 하양은 가장 극단적인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 만물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태어나서 처음 입는 하얀 배냇저고리, 순백의 웨딩드레스, 저승길을 배웅하는 소복에서 보듯 하양은 인간사의 통과의례를 주관하는 색이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색도 하양이다. 백의민족(白衣民族)이란 말에는 하얀 옷으로 자기를 낮추고 본능을 억제하는 성품이 담겨있다. 자연과의 동화를 지향하는 비움의 색, 하양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은 청백리를 숭상하고 담백한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풍성하면서도 단아한 백자 달 항아리도 하양이다. 의도적으로 남겨놓은 하얀 여백(餘白)은 형상으로 드러나는 검정을 빛나게 한다. 그래서 그림이나 글씨는 하양의 공간에서 시작하고 결백과 순결, 선함과 고매함을 골고루 내포한다.

하양을 상징하는 서쪽은 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가리킨다. 모든 고통과 절망이 눈 녹듯 사라져 다시 생겨나고 소멸하는 바 없이 순수하고 깨끗한 곳이다. 하양은 모든 부정적 의미가 사라진 색이다. 을유년 닭띠 해에는 부정부패와 빈곤, 갖가지 다툼이 말끔하게 없어지리라 기대해 본다.

성기혁 교수 khsung@kyungbok.ac.kr

○ 성기혁 교수는

△홍익대 미대와 동대학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동양제과, 선경그룹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1995년부터 경복대 디자인연구소장, 산업디자인과 교수(현)

△저서 ‘색즉시색’(교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