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국가보안법 협상을 둘러싸고 당 내부가 첨예하게 강온으로 갈리면서 균열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잡탕 정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이념과 성향을 지닌 의원들로 구성된 열린우리당은 17대 국회 시작부터 현안이 생길 때마다 줄곧 내분을 겪어 왔다. 그러나 이번만은 양상이 심각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입을 다물었던 당내 중진 의원들이 386 운동권 및 재야 출신 초재선 의원들의 행태에 대해 “더 이상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장 강경파 의원들도 당내 중진들의 모임인 기획자문위원회의에 대해 공공연히 “불법단체 아니냐. 해산시켜라”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기획자문위원회의를 당내 온건론의 진앙이라며 눈을 흘기고 있을 정도다.
중진 의원들은 최근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농성에 대해서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거리의 정치를 의원들이 앞장서 국회로 끌어들이는 것은 의회정치의 기본도 모르는 행태라는 이유에서다.
임채정(林采正) 기획자문위원장은 최근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국회 농성에 참여한 한 중진 의원을 최근 불러 ‘군기’를 잡았다. “나잇살이나 먹어서 지금 뭐하는 거냐”고 면박을 준 것이다. 임 위원장은 우원식(禹元植) 오영식(吳泳食) 의원도 불러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일부 중진들은 “의회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통탄했다.
국보법 때문에 고충을 당했던 한 중진 의원은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진보와 개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려 한다”면서 “내년부터는 확실히 버릇을 고치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소장 강경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일부 의원들은 4대 법안 직권상정을 거부하고 있는 김원기 국회의장에 대해 인신공격까지 하고 있다. 또 중진 의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회 농성장에 외부인사들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
한 386 운동권 출신 의원은 최근 국회 밖에서 국보법 폐지 주장을 하는 40여 명을 일괄 의사당에 입장시켜 농성에 참여토록 했다. 심지어 이들은 의사당에 들어온 뒤 “국회 정문에서 진입을 막은 국회 관계자가 누구냐”며 색출작업까지 벌여 실소를 자아냈다.
내년 벽두부터 열린우리당 내 중진 의원들과 소장 강경파 의원들 간에 한바탕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점차 현실감을 띠어 가는 분위기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