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의 공룡’ KT에서는 요즘 SOS 운동이 한창이다. SOS란 ‘보고서 양을 줄이고(Slim), 온라인(On-line)으로, 메시지를 명확하게(Simple) 전달하자’는 보고문화 혁신 캠페인. 이 운동은 이용경(李容璟·61) 사장이 직접 챙길 정도로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굳다. KT의 ‘보고문화’는 회사 내에서도 악명이 높다. 보고서 하나에 수십 쪽이 넘는 것이 적지 않고, 레이저프린터를 이용해서 화려하게 작성하다 보니 보고서 작성에 며칠이 걸린다.》
2001년 12월 초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였던 KT가 “1885년 우정국 출범 이래 120년간 조직에 체질화된 관료주의와 전쟁을 벌이겠다”며 경영 혁신을 선언한 지 만 3년이 지났다.
KT측은 지난 3년의 변화를 “조직의 유전자가 바뀌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통신업계에서는 “SOS 캠페인 자체가 아직도 KT 내부에 관료주의가 팽배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보여준다”며 “혁신이 체질화된 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공룡’의 노력=KT 비전경영실 신재준 부장은 “평가, 인원배치 승진, 조직구조, 기업문화 등 관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손을 대지 않은 부분이 없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은 ‘철(鐵)의 밥통’ 문화. 한때 6만명에 이르던 직원이 현재 3만8000명으로 2만2000명 줄었다.
조직에 더욱 충격을 준 것은 상무대우 이상의 임원급에 외부 인사를 수혈한 것. 이 사장은 8월 초 마케팅, 경영혁신, 부동산 개발, 대외협력 등 5개 임원직을 외부 인사로 발탁했다. 회사 창립 이래 외부 인사가 임원으로 수혈된 것은 처음이었다. 또 KT의 미래를 연구하는 신사업기획본부 등 중요 부서에 200여명의 경력직원이 ‘수혈’돼 일을 하고 있다.
의식개혁을 위해 각종 용어를 바꾸는 기업문화 운동도 실시됐다. 800쪽에 이르던 회사 내규를 3분의 1로 줄였다.
복명서, 훈시, 초도순시, 공적조서, 복무점검 등 공무원 사회에서나 쓰는 구(舊)시대 용어도 확인서, 지시, 첫 방문, 업무확인, 근무상황 등으로 바꾸었다. 승진시험을 보기 위해 회사 업무는 팽개친 채 독서실에서 1년간 공부를 하거나 연줄을 찾아다니던 승진 시스템도 실력 위주로 바꾸었다.
▽뿌리 깊은 관료주의의 그늘=하지만 KT 안팎에서는 3년간의 변화를 “아직 형식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SK텔레콤의 한 임원은 “KT에는 과감한 실행보다는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면피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며 “보고문화가 변화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협력업체도 아직 불만이 많다.
통신장비를 제조하는 한 중소기업 임원은 “KT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아직도 제품 경쟁력보다는 연줄이나 로비를 해야만 대기업에 납품할 수 있는 것이 통신업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KT의 한 중견부장은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회사의 성장이 한계에 달했는데도 조직 내부에는 위기감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