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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관]豪民을 보고 정치하라

입력 | 2004-10-20 18:29:00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1569∼1618)은 정치론인 ‘호민론’이란 글에서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의 세 부류로 분류했다.

현대적 의미로 각색한다면 ‘항민’은 대세에 순응해 사는 민초, ‘원민’은 불평불만에 가득 찬 부류, ‘호민’은 파당적 이해에 구애받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려 공론(公論)에 따라 행동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다.

허균은 이들 가운데 호민을 “두려워해야 할 존재”라고 지적한 뒤 이들이 떨쳐 일어나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다고 예언했다. 가까운 우리 역사에서 ‘현대판 호민’이 집단으로 출현했던 것은 아마도 1987년 6월 민주항쟁 시절 서울 명동에 나타났던 ‘와이셔츠 부대’였던 듯하다.

실제 역대 대통령을 자주 만났던 원로목사 K씨의 경우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항민과 원민을 쳐다보지 말고 호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고언을 대통령들에게 종종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사는 ‘원민의 목소리’가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민의 침묵 속에 좌건 우건 극단의 목소리를 가진 ‘꼴통 원민’의 논리가 횡행해 왔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았으니 하고 싶은 개혁을 하고야 말겠다’는 식의 권력 논리나 ‘과거가 아름답 다’는 퇴행적 논리, ‘내 밥그릇은 절대 못 뺏긴다’는 집단이기주의의 논리는 모두 원민의 목소리다. 이런 그악스러운 외침들에 파묻혀 현대판 호민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이런 한국정치의 근본적인 한계는 최근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간의 대치극에서도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여론의 수렴 지점은 ‘합리적 개정’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내에서 논의 초기 상당한 세를 얻었던 신중 개정론은 ‘폐지 관철’을 고집하는 당 지도부와 소장 진보파의 윽박지름에 기가 눌려 실종됐다. 신중론을 폈던 일부 의원들은 심지어 “보수 신문의 논조에 아부하려는 거냐”는 노골적인 위협까지 받고 있다. 한나라당도 박근혜 대표가 국보법 2조의 ‘정부참칭’ 조항 삭제와 명칭 개정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대세는 합리적 개정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하지만 당내 강경 보수 세력의 반발로 ‘국보법 폐지 결사 저지’의 목소리에 파묻힌 채 두 달이 다 되도록 변변한 대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두 진영 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지만 오늘 현대판 호민의 시각에서 보면 “어느 쪽도 서로의 대안이 아니다”는 점이다.

국민은 여러 번 속지 않는다. 몇 번의 권력교체극과 그 이후 벌어진 권력게임의 허상을 통해 국민은 이제 이 집단 대신 택한 다른 집단이 꼭 차선(次善)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 가고 있다.

특히 비등점에 달한 현대판 호민들의 공론이 폭발하면 정치권 전체에 공멸(共滅)의 폭풍이 정말 불어 닥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오늘 호민의 요구는 좌우 이념 논란에서 벗어나 민생을 챙기고 미래 국가발전전략에 지혜를 모으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허균의 말처럼 ‘백성(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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