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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국민은행장 징계 전면전 비화

입력 | 2004-08-30 18:29:00


《‘회계기준 위반에 대한 단죄’인가, ‘신(新)관치금융으로의 회귀’인가. 증권선물위원회의 국민은행 중징계 결정을 놓고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과 감독 대상 기업인 국민은행이 정면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은 조사 과정에서 입수한 국민은행 내부 문건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신관치금융으로의 회귀’ 주장을 반박했다.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이 말문을 여는 등 국민은행측도 적극적으로 반론을 펴고 나섰다.》

▽내부 문건 둘러싼 공방=금감원 김중회(金重會) 부원장은 이날 오전 9시50분 예정에 없던 기자브리핑을 자청했다.

그는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처리한 일에 대해 ‘은행장 흔들기’나 ‘인사 개입’ ‘신관치금융’ 등의 말이 나오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며 ‘국민카드 합병 관련 합병세무 절세전략 보고’라는 문건을 제시했다.

국민은행 회계팀이 지난해 9월 작성한 이 문건은 문제의 회계처리가 ‘기업회계 기준에 위배될 수 있고’ 국세청에 대한 질의가 ‘사실 관계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 행장과 윤종규(尹鍾圭) 부행장, 이성남(李成男·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당시 감사 등이 문건에 서명했다.

김 부원장은 “국민은행이 회계처리 기준 위반 사실을 알고 있었고 국세청과의 사전 협의도 형식적이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국민은행은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윤 부행장은 “문건의 내용 중 ‘기업회계 기준에 위배될 수 있다’고 한 것은 회계법인의 의견인데 바로 이어서 ‘감사의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져 있다”고 말했다.

또 “국세청에는 지난해 10월 1차 질의를 했으며 올해 6월에도 2차 질의를 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국세청도 이를 확인했으나 “국민은행이 아닌 개인 이름으로 질의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양측 수장도 발언 공방=이 문제에 관해 공식적으로 말을 아꼈던 윤증현(尹增鉉)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감원장도 입을 열었다.

윤 위원장은 이날 열린 간부회의에서 “감독당국과 정부는 은행의 인사에 간섭하지 않는다”며 “국민은행이 회계처리를 하면서 금융당국과 상의하지 않는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었고 다른 은행은 제대로 회계처리를 했다는 사실을 증선위가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행장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도 위기관리 과정에서 선의로 내린 판단 오류에 대해서는 면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증선위 판단이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법무법인 회계법인 국세청 등 우리에게는 ‘무서운 호랑이’들에게 자문한 결과모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과거사 언급과 문건 공방 논란=김 부원장은 “국민은행이 2002년 회계처리를 하면서 회계기준을 3건 위반한 사실을 1년 전 적발했지만 최대 은행인 점 등을 참작해 행장 등의 ‘이행각서’를 받고 징계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금감원 김대평(金大平) 은행검사2국장은 “이 금통위원 등 나머지 임원에 대해서도 금감위 제재심의위원회가 책임이 있는지 따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을 공개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자 김 부원장은 “어차피 국회 등에서 공개될 문건이므로 오해를 끝내기 위해 미리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회계처리기준 위반에 대한 금융감독원 주장과 국민은행 반론금융감독원쟁점국민은행“내부 문건을 통해 행장 등이 미리 알고 있었다.”회계기준 위반 사전 인지 관련“회계법인이 감사의견에 영향없는 적정 회계처리라고 했다.”“국세청과는 형식적으로 상의했고 이 사실을 행장 등이 알고 있었다.”국세청과의 사전 협의 관련“지난해 10월 1차 질의를 했고 올해 6월 금감원의 지적에 따라 2차 질의했다.”“국내 최대 은행의 도덕성 및 다른 은행과의 형평성 고려해 중징계 불가피”중징계의 정당성 관련“위기 관리 과정에서 선의로 내린 판단의 오류는 면책돼야”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이철용기자 lcy@donga.com

▼장하성 고려대 교수 “외국 투자자 金행장 징계에 불만”▼

장하성 고려대 교수(사진)는 최근 김정태 국민은행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결정과 관련해 많은 외국인투자자들이 불만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장 교수는 “금감원이 김 행장에 대한 중징계를 예고한 25일 이후 외국인투자자들의 문의가 잇따랐다”며 “27일에는 캐피털그룹 등 국민은행 주식을 대량 보유한 외국인투자자들이 마련한 콘퍼런스 콜(전화회의)에 초청을 받아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들은 국민은행이 악의적으로 장부를 꾸민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세금을 덜 내는 방식으로 회계를 작성한 것뿐이고 투자자들이 이를 이미 알고 있었으며 국세청에 사전 문의까지 한 사안인데 제재를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특히 정부 당국이 전에 비슷하게 변칙 회계 처리를 했던 다른 은행들은 문제 삼지 않고 국민은행만 문제 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는 것.

그는 “일부 투자자들은 금감원에 직접 문의하거나 항의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면서 “김 행장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국민은행은 물론 다른 한국의 은행들의 투자 위험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가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