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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데이트]인터넷 만화 돌풍 강풀

입력 | 2004-08-27 18:08:00

강풀은 요즘들어 “강원 원주시에 사는 여자친구가 한달에 한두번 찾아와도 작업하는 내 뒷통수만 쳐다보다 간다”고 할 만큼 바쁘다. 그의 꿈은 “화장실에서 다리가 저리도록 앉아 있어도 결코 중간에 덮을 수 없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다.- 박주일기자


26일 오후 8시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30)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 중인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의 한 회분을 마감한 직후였다. 당초 오후 5시로 예정됐던 인터뷰를 약속시간이 임박해 다시 오후 8시로 미뤄야 할 만큼 강풀은 마감에 쫓겼다.

“요즘 그림이 잘 안 그려지네요. 예전 같으면 10분에 끝낼 분량이 2시간 넘게 걸려요.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하는데 걱정 반 기대 반이에요.”

강풀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다음에 연재했던 ‘순정만화’로 최고의 인기만화가로 떠올랐다. ‘순정만화’의 영화 판권을 사기 위해 6개 회사가 경쟁을 벌인 끝에 이달 렛츠필름이 계약했고,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만든 김경형 감독이 12월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연재가 끝나지 않은 ‘미스테리…’도 이미 청어람투자배급사가 영화 판권을 계약했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순정만화’는 중국과 태국에 수출됐고 현재 일본과도 판권계약이 진행 중이다. 일본측 출판사들은 억대 계약금을 제시하고 있다.

○ ‘순정만화’등 잇단 영화판권 계약

강풀의 히트작 ‘순정만화’(왼쪽 위)와 작가 자신을 표현한 만화 캐릭터.- 사진제공 문학세계사

그는 잔잔한 감성이 흐르는 탄탄한 이야기, 칸을 나누지 않는 독특한 구성으로 입맛 까다로운 네티즌 만화 팬들을 사로잡았다. 만화가 양영순은 “우리 만화계에 기존 일본만화와 차별되는 오리지널 한국형 만화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강풀의 작품을 칭찬했다.

“결말을 설정해 놓고 스토리를 만들고, 스토리를 대충 완성해야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요. 그래야 이야기가 흔들리지 않죠.…전 진부한 게 좋아요. 30세 회사원과 띠 동갑인 여고생의 사랑을 그린 ‘순정만화’도 사실 소재는 진부하잖아요. 다만 진부한 걸 어떻게 새롭게 풀어내느냐의 문제겠죠.”

다음 작품으로 예정하고 있는 ‘리얼 청승 신파극’에서도 진부한 소재를 마구 섞을 생각이다. 재벌 2세, 백혈병에 걸린 여자,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나쁜 여자, 깡패 등 진부한 요소들이 다 나온다.

차차기작도 이미 구상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유족이 전두환 전 대통령 집으로 쳐들어가는 정치 패러디다. 예명 ‘풀’처럼 그의 머릿속엔 아이디어가 ‘풀(full)’한 상태다.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의 그림 따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강원 원주시 상지대 국문학과 재학시절 ‘대자보 만화’로 교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화계의 벽은 높았다. 졸업 후 출판 잡지사 400여곳에 만화 이력서와 명함을 보냈지만 한 군데서도 연락이 없었다.

○ 한때 출판사 400여곳서 퇴짜 맞기도

그는 인터넷으로 눈을 돌렸다. 똥, 토사물 등을 소재로 다룬 엽기만화 ‘일쌍다반사’로 조금씩 인기를 얻어 1세대 인터넷 만화가가 됐다.

그가 만화의 기본법칙으로 여겨지던 칸 분할을 없앤 것도 인터넷 만화에 적응한 결과다.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 스크롤로 내려보는 인터넷의 특성을 감안했던 것. 칸을 없애자 만화적 상상력도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인터넷은 답글 문화잖아요. 독자의 반응을 빠르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선 좋지만 독자의 요구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해요. 지금은 답글을 연재 끝난 다음에 보고 있어요.”

그는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평소 귀찮게 하지 않고 걷는 모습이 우아해서’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그는 손가락으로 고양이의 걸음걸이를 섬세하게 흉내내기도 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