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려울수록 충신이 생각나고, 집안이 어려울수록 어른이 그리운 법이다. 도시 빈민운동으로 유명한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가 자이툰부대 환송예배에서 파병 지지 설교로 장병들을 격려해 주었다는 얘기를 접하면서 한국 교회에도 할 말은 하는 목회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평화 재건과 국익을 위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는 3600여명의 국군장병과 그 가족에게 희망과 확신을 주고 싶었다”는 게 김 목사의 소신이다.
하지만 설교문을 구해 보기에 앞서 김 목사가 당할 봉변을 먼저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는 그에 대한 비난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편 가르기’를 강요하는 시대에 “사안에 따라 진보도 되고 보수도 된다”는 그의 소신은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독재정권 시절과는 전혀 다른 언로(言路)의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나 현 집권층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낼 경우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저주와 욕설이 쏟아진다. 한미동맹이나 이라크 파병에 대해 사석에서는 이런저런 불가피성을 얘기하는 지식인들도 공개적으로는 한사코 언급을 삼간다.
견디다 못해 차라리 침묵하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의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경륜 있고 깐깐한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자칫 평생 지켜 온 이름과 명예가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김수환 추기경같이 사심(私心) 없는 원로의 충정(衷情)어린 발언도 매도되고 있는 현실이다. 어느 의미에서 추기경의 침묵은 그의 고언(苦言)보다 심각한 경고다. 무관심은 때로 미움보다 더 큰 외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