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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영화파일]‘스파이더맨 2’의 토비 맥과이어

입력 | 2004-07-08 16:47:00

사진제공 무비&아이


최근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토비 맥과이어는 올랜도 블룸(‘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와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 제이크 길렌할(‘투모로우’의 아들 샘) 등과 함께 2000년대 할리우드의 새로운 영웅으로 뽑혔다. 연약한 이미지에 ‘꽃미남’으로까지 불리는 이들이 영웅이란 호칭을 듣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만큼 요즘의 세태가 예전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는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근육질 스타가 할리우드 영웅을 대변했다면, 1990년대에는 브래드 피트나 조니 뎁처럼 반항적 이미지의 영웅들이 주목을 끌었다. 반면 2000년대 들어서서는 내면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민감한 청년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라면 토비 맥과이어를 신(新) 할리우드 영웅이라고 부르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맥과이어만큼 속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듯한 청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배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때문에 갑작스럽게 인기를 모으는 것 같지만, 토비 맥과이어는 훨씬 이전부터 배우로서 스타성을 엿보여 왔다. 그의 전작 가운데는 꽤나 흥미 있는 작품들이 많다. 대다수 작품들에서 토비 맥과이어는 ‘민감한 성격을 가진 영웅’의 대표주자답게 친근하고 평범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하면서도 염세적인 캐릭터를 주로 맡아 왔다.

대표적 작품이 바로 리안(李安) 감독의 ‘아이스 스톰’. 이 영화야말로 토비 맥과이어란 이름을 세계 영화 팬들의 머릿속에 남겨준 작품이다. 1970년대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한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토비 맥과이어는 붕괴돼 가는 집안 상황에도 불구하고 코믹스(스토리가 있는 연속만화)의 영웅에 빠져 세상을 겉도는 장남으로 나온다.

그의 아웃사이더 연기는 힘없고 풀죽은 표정연기로 한층 더 그럴 듯하게 보이는데, 샤를리즈 테론과 호흡을 맞췄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사이더 하우스’나 리안 감독의 또 다른 작품 ‘라이드 위드 데블’, 그리고 국내에서는 개봉관에 걸리지도 못할 만큼 찬밥 대우를 받았던 커티스 핸슨 감독의 ‘원더 보이스’ 등도 그의 처량한 눈빛 연기를 보여주는 대표작들이다.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지 못하는 철저한 이방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사색에 빠져 있는 듯한 파리한 지식인 청년의 이미지. 바로 토비 맥과이어의 매력이다.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스파이더맨’ 또한 토비 맥과이어가 이전 작품에서 선보였던 음울한 캐릭터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야말로 스크린 영웅으로 재탄생한 스파이더맨이 이전의 코믹스 영웅 때보다 더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비결인 셈이다.

가면 안의 생과 가면 밖의 생으로 극중 인물의 삶은 확연히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샘 레이미 감독이 재창조해 낸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경우 이상하게도 두 캐릭터 모두 외롭다는 느낌을 준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 한번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데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 곁을 떠나야 하는 고독한 영웅. 2000년대에 시리즈로 만들어진 스파이더맨은 외롭고 쓸쓸하다. 어쩌면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렇게 마음의 상처가 많을는지도 모른다.

주말에 훨씬 앞서 수요일에(6월 30일) 개봉된 ‘스파이더맨2’는 개봉 1주도 안돼 간단하게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올여름 블록버스터 최고 흥행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최우선 후보임을 과시한 셈이다. 1편에서만큼 이번 2편에서도 스파이더맨과 그의 연인 메리 제인의 키스 신은 환상적이다. 블록버스터 치고 꽤나 기억에 남는 멜로드라마를 선보인다는 얘기다. 12세 이상 관람 가.

(한 마디만 더) ‘스파이더맨’ 1편과 2편 사이에 개봉됐던 ‘씨비스킷’은 국내에서 단 5000명의 관객만이 본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씨비스킷’이야말로 토비 맥과이어의 최고작으로 뽑힐 만한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ohs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