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몸은 섬을 떠나지만 망망대해에서 꿋꿋이 임무를 다하는 등대처럼 제2의 인생을 살겠습니다.”
인천 팔미도등대 소장인 허근(許根·60)씨가 33년간의 등대지기를 마치고 30일 뭍으로 나온다.
그는 1971년 11월 친지 소개로 등대원 시험에 합격한 뒤 인천 옹진군 영흥면 부도에서 등대지기를 시작했다.
이듬해 2월 결혼한 그는 등대 숙소에 마련한 신혼방에서 난방이 되지 않아 부인과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당시 생필품 지원이 잘 안돼 땔감을 직접 산에 올라가 구하기도 했다.
파도가 높아지면 배가 뜨지 못해 부식과 식수공급이 며칠씩 끊겨 고생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도 등대에서 첫째와 둘째를 본 그는 선미도등대를 거쳐 한국 등대의 효시인 팔미도등대로 가면서 교육문제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아이가 아프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나면 내가 이 일이 아니면 할 것이 없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는 “친인척, 또는 지인 등의 경조사에 참석할 수 없어 사람 구실 못할 때가 더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파도와 갈매기를 친구 삼아 등명기(燈明機)를 밝혀 온 삶은 고독과 그리움 그 자체.
등대원이 되기 위한 적성능력에는 ‘고립된 장소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인내력과 책임감’이 포함돼 있어 어쩌면 그런 고독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33년의 등대지기 생활 중 13년을 팔미도등대에서 생활한 그는 이 등대에 애착을 느낀다.
지난해 12월 22일 새 등대 점등과 함께 100년간의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팔미도등대를 지켰다.
“촌놈이 이 일 안했으면 사람 구실 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절망과 허망도 겪어봐야 세상사는 맛을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등대를 지킬 든든한 후배들이 있어 후회는 없습니다.”
인천=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