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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2004과학기술인]서울大 물리학과 국양 교수

입력 | 2004-04-27 18:28:00

궁금한 것을 못 참는 국양 교수는 오늘도 호기심을 좇아 나노세계로 여행을 떠난다.-사진작가 박창민


《동아일보사와 동아사이언스 그리고 한국과학문화재단은 과학기술부 후원으로 제3회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10인을 27일 선정 발표했다. 2002년부터 선정된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은 청소년에게 21세기 과학기술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보람과 비전을 제시해 왔다. 28일부터 이들 10인이 걸어 온 힘들었던 순간과 성공을 위한 노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10회에 걸쳐 사이언스면에 연재한다. 》

“양아! 문 열어라.”

“히히, 예!”

“덜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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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나 손님이 대문에서 부르는 이름은 언제나 4남 1녀 중 막내. 그러면 막내는 쏜살같이 대문으로 뛰어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방안에서 줄만 잡아당기면 그만이다. 도르래와 줄을 연결해 방안에서도 대문의 빗장을 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국양 교수(51)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추억이다.

손재주가 좋아 전원 두꺼비집은 물론 집안 식구들의 수선 민원을 모두 해결하던 초등학생이 30여년 후에는 나노과학의 문을 연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우리는 주변 사물을 눈으로 본다.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시영역은 빛을 이용한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빛으로 볼 수 없는 원자의 세계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어두운 상자 속 물건을 알아맞힐 때 손으로 표면을 더듬어 모양과 특징을 유추하는 방식이 그것. STM은 바로 손과 같은 특수 탐침을 이용해 원자의 표면을 읽어낸다.

물질의 근본을 이루는 원자들의 세상, 10억분의 1m. 이 세계는 1981년 스위스 IBM연구소의 물리학자 게르트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가 STM을 발명하기 전까지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STM이 개발된 후로 물질의 근본을 이루는 나노세계에 대한 이해가 가속화됐다. 한마디로 STM은 나노과학의 출발점인 셈이다.

국 교수가 STM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벨연구소 연구원 시절인 1982년 겨울.

“박사 과정에 있던 1979년경 지도교수에게 STM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말한 적이 있어요. 지도교수는 그냥 웃어버렸죠. 그런데 1982년 로러 박사가 벨연구소에 와서 자신이 개발한 STM을 얘기할 때 흥분했어요.”

국 교수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STM 제작에 매달렸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니히와 로러 박사는 1986년 노벨상을 타기 전까지 STM의 공개를 꺼렸다.

그는 주저 없이 벨연구소 동료들의 방문을 두들기며 문제를 풀어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뭔가 만드는 일에는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도 모르느냐면서 무시도 많이 당했죠.”

그러나 무시당하는 서러움보다 몰랐던 것을 배우고 ‘국양표 STM’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겐 더 큰 힘이었다. 덕분에 1984년 4월 22일 나사에서 소프트웨어까지 직접 만든 ‘국양표 STM’으로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의 표면을 볼 수 있었다.

국 교수는 궁금한 것이 많다.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맥도널드 햄버거와 버거킹 햄버거 맛의 차이는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의 발음으로 고향을 맞혀 보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못 말리는 호기심은 국 교수 연구의 큰 동력이다. 반도체 회로의 선폭 한계는 얼마일까,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은 무엇일까를 고민할 때 생기는 호기심과 같은 맥락이라는 말이다.

국 교수가 과거에 STM을 만들면서 감히 볼 수 없던 세상에 도전장을 냈다면 이제는 원자들의 물리적 성질을 밝히고 이를 이용해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하고 싶은 꿈이 있다. 인체의 기본 단위인 세포에서 에너지 발전소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연구 대상. 이 생체 소기관을 닮은 나노 크기의 에너지변환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결과는 없어도 상관없어요. 내가 알고 싶어서 해봤다는 것이 중요하죠. 그 과정에서 저는 가능한 모든 것을 즐길 테니까요.” 나노세계의 모험가다운 한마디였다.

장경애 동아사이언스기자 kajang@donga.com

▼국양 교수는▼

1953년 4남 1녀 중 막내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줄에 유리가루를 입히고 전차 철로에 못을 갖다 놓아 칼을 만들던 유년 시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데 희열을 느끼던 고교 시절을 보내고 1971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7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로 유학을 떠나 1981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해부터 1991년까지 10년간 AT&T 벨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지냈는데 1984년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을 만들면서 나노과학의 리더로 급부상했다. 1991년 3월 서울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국내 나노과학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청소년에게 한마디▼

호기심의 나무를 키워라.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포기하지 말고 해결하라. 그러면 점점 더 깊이 있는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기획:동아일보 한국과학문화재단 동아사이언스

후원:과학기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