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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거꾸로 가는 지방분권

입력 | 2004-03-10 23:01:00


대구시와 경북도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추진 중인 한방산업단지 조성 후보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채 중앙정부에 떠넘겨 논란이 일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후보지 결정을 둘러싸고 1년 가까이 머리를 맞댔으나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기획예산처 등 관련부처에 계획안을 내기로 10일 합의했다.

경북도는 대구 수성구 성동 및 경북 경산시 서부동 또는 대구 동구 금강동 및 경산시 압량면 두 후보지 가운데 한 곳을 선정해 기획예산처의 타당성 조사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구시는 두 후보지를 모두 제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시도는 그동안 한방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대구·경북 공동기획단을 구성해 협의를 계속했으나 이해관계에 얽혀 후보지 결정을 못하고 질질 끌어왔다. 이 과정에서 조해녕(曺海寧) 대구시장과 이의근(李義根) 경북지사는 별다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이들 시도는 “한방산업을 내실 있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대구시와 경북도가 마찰을 빚었지만 대구시의 입장에 포용력을 갖는다는 차원에서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구시는 경북도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고위 관계자는 “경북도가 광역자치단체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라며 “지역경제를 위한 큰 틀보다는 주도권을 쥐려는 분위기가 짙다”고 말했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동안 다른 지역 자치단체들도 한방산업단지 조성에 나서고 있어 자칫 대구 경북지역 한방산업단지 계획이 축소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남도와 전북도는 6000억원을 들여 한방산업단지와 한방테마촌을 추진하고 있으며, 강원도도 횡성군을 중심으로 2000억원 규모의 한방단지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 제주도와 경남의 자치단체들도 한방산업 육성에 뛰어들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이번에 한방산업단지 후보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중앙정부에 기대는 모습을 보이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남대의 한 교수는 “자치단체들이 지방분권 차원에서 ‘지방 스스로 정책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놓고서는 실제로 이해관계에 얽혀 다시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형태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지방분권국민운동 전국대표자회의 김형기(金炯基·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의장은 “지난해 12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지방분권 3대 특별법을 이끌어냈는데 정작 자치단체들이 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치단체들이 겉으로는 지방화를 외치면서 여전히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