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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기업들 “기술이전 NO”…“삼성전자처럼 당할라”

입력 | 2004-03-10 17:56:00


삼성전자의 박사급 연구원들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고졸 직공을 따라다니면서 기술을 배웠다. 기술 이전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온갖 수모를 감수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워야 했다.

현대자동차는 일본의 전현직 기술자를 주말에 한국으로 모셔와 특급 대우를 해주면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요즘 업계에서는 “그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선진국 기업들은 최근 정식 기술도입 계약을 의뢰해도 “핵심기술은 절대로 줄 수 없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모를 겪더라도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던 때가 낫다는 것.

LG화학은 2001년 연료전지를 개발하기 위해 일본 업체에 기술도입 계약을 추진했다가 거절당해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새끼 호랑이를 키웠다’=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급성장하면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기업을 견제하고 있다.

작년 2월에는 일본 정부가 나서 ‘기술유출 방지’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에는 제조업체가 해외에서 합작하거나 현지공장을 건설할 때 부품, 재료, 제조설비, 도면 등을 통해 고급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는 내용이 담겨있다.

일본 업체들의 견제는 더욱 심해졌다.

액정표시장치(LCD) TV 시장을 놓고 삼성전자 및 LG전자와 경쟁 중인 샤프는 아예 재료 가공법에 대해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 특허 공개 자체가 노하우 유출의 위험이 높다고 본 것.

캐논은 제조용 기계나 공구를 회사 내부에서 직접 제작하고 있다. 회사 내부에서 기계를 만들어 쓰는 비율이 수년 사이 20%에서 70%까지 높아졌다. 캐논의 노하우가 기계업체를 통해 한국이나 중국에 흘러드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

삼성종합기술원 이창협 상무는 “삼성전자가 급성장하면서 일본 업체들의 견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기업은 물론 연구소나 대학들마저 삼성전자가 의뢰한 연구프로젝트를 맡기 꺼릴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각각 기술을 전수한 미쓰비시와 마쓰다자동차는 “새끼 호랑이를 키웠다”며 한탄하고 있다. 오래된 기술이라고 전수해 줬다가 큰 코 다쳤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

폴크스바겐과 크라이슬러,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카메라폰을 직장에 반입하는 것을 금지할 정도로 기술 유출에 신경을 쓴다.

정보기관들도 “주요 임무가 기술보안과 산업스파이 색출”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전 방식 찾기=삼성전자는 선진국의 기술 이전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러시아나 중국의 연구소 및 대학에 기술 프로젝트를 의뢰한다. 이들 국가는 기초과학 수준은 높지만 산업화 단계는 낮아 기술 이전에 대한 규제가 덜하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일본에서의 기술 도입이 어려워지면서 돈을 더 주고서라도 미국 업체에서 기술을 들여오거나 기술료 지불은 물론 부품을 구매해 주는 전략을 펴고 있다.

현대모비스 정수경 차장(사업계획담당)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기술을 들여올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며 “선진업체들이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이전해 주는 방식을 기피하기 때문에 합작이나 부품 구매계약을 해 기술을 들여온다”고 설명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선진업체가 상용화된 핵심기술을 넘겨주지 않자 아예 미래기술에 공동 투자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선관웅 과장은 “미래기술은 위험분산 때문에 선진업체들이 공동투자를 받는다”며 “새로운 기술을 전수받는 비용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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