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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송인수/교단에 평온이 찾아올 때까지…

입력 | 2004-01-28 18:56:00


“인수야, 늙으면 어쩌려고? 안 된다.”

교직을 그만두겠다는 내 이야기에 놀라 어머니는 한사코 말리셨다. ‘좋은 교사 되기’ 운동을 하겠다는 사람이 교직을 그만둘 수 없는 법이라는 주변의 ‘합리적인’ 충고에 5년 이상을 미루다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퇴직 이외에는 이 운동을 이어갈 방안이 보이지 않아 선택한 불가피한 길이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교직의 안정성이 퇴직 즈음해서는 너무도 큰 매력으로 다가와 나는 무척 당황했다. 밤마다 꿈으로 찾아오는 아이들과 동료들의 모습에 여러 밤을 뒤척이다가 나는 퇴직이 내가 꿈꾸는 세상을 보기 위해 치러야 할 최소한의 대가라는 생각에 다시는 떠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교육 문제 가운데 교사들이 잘못해서 생긴 부분에 대답하기 위해 시작한 ‘좋은교사운동’. 지난 몇 년간 ‘가정방문’과 ‘자발적 수업평가’ 캠페인을 확산시키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나는 뚜렷한 흐름도 만들지 못하고 힘만 소진되는 현실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얼마 전 한 교사에게서 “다른 교원단체들은 교사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싸워주는데, 왜 좋은교사운동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일만 하느냐”는 항변을 듣기도 했다. 갈채를 기대하며 떠나온 길은 아니었지만 가는 도중 작은 위로는 있어야 했는데 그 전망은 어둡기만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무렵, 좋은교사운동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의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분에 넘치는 치사를 받으면서 내가 걸어온 길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NEIS 문제로 황폐해진 교육계,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앞으로 교장임용제도와 같은 ‘권력구조 재편’ 문제로 교단은 더욱 힘겨워질 것이다. 나는 교단 갈등에 대한 우려가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세력이나 가질 법한 보수적 관심사라고 폄훼하고 싶지 않다. 이 파도가 밀려가고 제도가 재편되면 교단에 평온이 찾아올 것이기에 이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는 관점에도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평온이 찾아올 때까지 교사들이 받을 상처와, 그 아픔을 안고 교실에 들어갈 교사들의 힘없는 가르침 때문에 피해를 볼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생각이 다른 타인들과의 공존이 거부된 채 오는 ‘진보의 세상’은 진보가 아니다.

자발적 수업평가 운동을 하자는 e메일을 보낸 뒤 어느 날 나는 한 여선생님의 답장을 받았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그런 요구는 이제 하지 마세요.” 그분의 고단함과 아픔이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길을 멈출 수 없다.

영화 ‘미션’의 주인공 멘도자 신부는 자신이 잡아 팔아넘긴 원주민 노예들에 대한 속죄의 심정으로 쓰던 무기들을 등에 짊어지고 아마존의 험한 폭포수를 넘었다. 우리도 이 땅에서 교사라는 이름으로 지은 잘못을 끌어안고 가는 이 속죄의 길을 쉬어서는 안 된다.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수고가 교육을 새롭게 하는 힘으로 쓰임 받게 될 그날이 말이다.

▼약력 ▼

△1964년생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졸 △전 구로고 영어교사 △2003년 3월 퇴직 후 ‘좋은교사운동’ 상임총무로 활동 중 △저서 ‘요즘 아이들 힘드시죠’

송인수 좋은교사운동 상임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