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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이 천사]'사랑의 공부방' 운영 김표남씨

입력 | 2004-01-16 18:22:00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는 김표남씨. -김미옥기자


늦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001년 3월 서울 강북구 수유4동 주택가. 남루한 차림의 한 30대 후반의 여자가 주택가 안에 있는 한 사설 공부방의 문을 두드렸다.

공부방 주인은 초등학생을 상대로 영어 수학 글짓기 등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가는 김표남씨(41·여). 김씨가 문을 열자 그 여자는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에 막 올라간 아들이 있는데 저희는 돈이 없습니다. 아이가 너무 똑똑해요. 꼭 남들만큼 가르치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그 어머니의 눈빛에는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이 가득했다.

김씨는 자신도 한때 경제적으로 어려워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경험이 떠올랐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어렸을 때 김씨 집안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가족 중에 큰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어 형편이 아주 어려웠어요. 딸아이를 남들처럼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 했죠. 아들을 맡아달라던 그 어머니의 마음이 아마 집안이 어려웠을 때의 제 마음과 같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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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흔쾌히 그 여인의 아들을 맡았다.

그 때 만난 30대 여인의 눈빛은 김씨의 인생을 크게 바꿔 놓았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찾아다녔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주변에서 소개해 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어느덧 그의 공부방에서는 14명의 학생들이 그에게 무료로 배우고 있다.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 분위기 탓에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많았다. 이들을 상대로 공부의 필요성을 알려주면서 학습도 함께 진행하는 끈질긴 노력을 보여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방에 학습 분위기가 형성됐고 아이들 성적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글짓기대회 등에서 상을 타오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었다.

‘무료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김씨는 봉사의 영역을 점차 넓혀나갔다. 2001년부터 150∼200포기씩 김장김치를 담가 주변의 무의탁 노인 수십명에게 나눠주고 있다. 또 올해부터는 매주 한 번씩 수유4동 산동네를 돌며 구청에서 나온 도시락을 노인들에게 배달하는 일도 맡았다.

김씨는 지금도 생활이 넉넉한 편이 아니다. 공부방에서 몇몇 ‘유료학생’을 가르치고 받는 돈으로 25평짜리 전셋집에서 세 식구의 생계를 꾸려간다. 더구나 앞으로는 공부방을 금지한다는 정부 방침이 알려지면서 생계마저 걱정해야할 판이다.

그가 3년 전 처음 맡았던 첫 ‘무료학생’은 요즘 전교에서 1, 2등을 다투는 뛰어난 학생이 됐고 올해 중학생이 된다. 최근 김씨는 그 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항상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선생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꼭 선생님처럼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