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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만나는 시]천양희, '운명이라는 것'

입력 | 2004-01-13 18:08:00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씩 철썩이고

종달새는 하루에 3000번씩 우짖으며 자신을 지킵니다

용설란은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한 꽃대에 3000송이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습니다

벌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560만송이의 꽃을 찾아다니고

낙타는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도 있고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도 있습니다

운명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요

-시집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작가) 중에서

파도는 제가 하루에 70만번이나 철썩이는 줄 모르고, 종달새는 제 울음 3000번을 세지 않으며, 용설란은 100년을 하루로 여길지도 모른다.

벌은 꿀 무게를 저울에 달지 않으며, 낙타는 눈이 젖은 채로 즐겨 웃고,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는 삶의 의미를 ‘울음’에 두지 않으니 스스로 매인 운명을 알지 못한다.

조롱(鳥籠) 속의 새가 새장을 인식하는 순간 갇히고, 새장을 인식하지 못하면 영원히 새장을 벗어날 수 없으니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운명은 알지 못함으로써만 벗어날 수 있거늘 운명을 인식하는 것 또한 초월을 꿈꾸는 이만의 운명이니, 종일토록 문설주에 기대어 종달새 우짖는 소리 헤아리느라 외롭다.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