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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은 태왕릉’…입증 유물 발견

입력 | 2004-01-13 12:44:00


광개토대왕릉은 장군총이 아니라 태왕릉임을 입증하는 유물이 발견됐다.

우석대 조법종 교수(43·사학)는 최근 중국 지안시 지안 박물관을 답사한 결과 "2003년 5월 태왕릉에서 출토된 청동방울에 '신묘년호태왕O조O구십육(辛卯年好太王O造O九十六)'이라는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조 교수 등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 소속 교수들은 이날 고려대에서 열린 고구려사 논쟁 특강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비어 있는 글자를 현지 해석에 따라 넣을 경우 '신묘년호태왕(무)조(령)구십육·辛卯年好太王(巫)造(鈴)九十六'이 된다.

이번 발견은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태왕은 광개토대왕의 완전한 묘호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끝 세글자로, 광개토대왕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태왕릉에서 나온 청동구슬에 '호태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는 것은 능의 주인이 '호태왕'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방울은 높이가 5-6㎝, 위 지름이 2.5㎝, 아래 지름이 3㎝인 종 모양 원통형"이라면서 "금동제 장식품 30여점과 함께 발굴됐다"고 말했다.

그는 "방울에는 특별한 장식문양은 없고 '신묘년호태왕(무)조(령)구십육'이라는 한자가 세자씩 사방을 돌아가며 음각으로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며 "서체는 광개토대왕비나 호우총의 글자체와 비슷했으며, 크기는 1㎝가 채 안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이 문장은 '호태왕(광개토대왕)의 무당이 만든 96번째 방울'로도 해석될 수 있다"면서 "방울이 특별한 일을 기념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큰 만큼 광개토대왕비의 '신묘년조'를 일본식이 아닌 정인보 선생 식으로 해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나일본부설은 19세기 일본 학자들이 광개토대왕비의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 而爲臣民' 즉, 왜가 신묘년부터 바다를 건너와 백제, 신라를 정복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한 데 근거한다.

일본측 해석에 대해 위당 정인보 이래 남북한 역사학계는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 而爲臣民'의 문장을, '파(破)'까지 한 문장으로 끊어 '왜'가 아닌 '고구려'를 주어로 '고구려가 신묘년에 일본을 무찔렀다'고 해석해 왔다.

이 같은 논쟁 중에 '신묘년호태왕(무)조(령)구십육' 문구 발견은 '신묘년조'를 해석하는 새로운 돌파구다. 더구나 문구는 '신묘년에 호태왕(광개토대왕)의 무당이 만든 96번째 구슬'이라는 해석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구슬이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주조됐다는 시대상을 고려할 때, 이는 신묘년에 광개토대왕이 기념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광개토대왕이 이끄는 고구려가 일본을 파했다는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논거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리모델링을 거쳐 10월1일 개관한 지안박물관에는 새로 발굴되거나 보고서에만 나와 있던 비공개 유물이 전체 유물이 전체 전시물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4월말까지 관광객의 출입이 전면 통제된 상태다.

디지털뉴스팀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