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회 본회의는 이른바 ‘농촌당’ 의원들의 의사진행 방해로 파행을 겪다가 결국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다음 달 9일로 또 연기했다.
농촌당이란 이 FTA 비준안을 반대하는 농촌 지역 출신 의원들을 일컫는 여의도 정가의 신조어.
지난해 12월 30일 FTA 비준안의 본회의 상정을 몸으로 막은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농촌당 총무’ 이규택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기도 했다.
농촌당이 FTA 비준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식량 안보에 문제가 생긴다” “정부의 지원 대책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칠레가 첫 FTA 국가로 적절치 않다” 등이었다. 나름대로 일리도 있고,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도 있다.
또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의원처럼 대도시 출신이지만 FTA 비준안을 비판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농촌당의 FTA 반대 의견을 ‘총선 표만 의식한 이기적 행동’이라고 폄훼할 수만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반대가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무시한 채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소속 농촌당 의원 30여명은 이날 사전에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비준안에 대한 무기명 비밀투표를 강행하면, 투표함을 감춰 버리거나 아예 부숴 버리자”고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농촌당 소속인 이정일(李正一·민주당) 의원은 의총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를 요구한 의원 55명의 명단을 농민단체에 넘겨 낙선운동을 하도록 만들겠다”고 윽박질렀다. 그는 “공개 투표하면 FTA 비준안을 부결시킬 수 있지만 무기명으로 투표하면 가결돼 버린다”고 덧붙였다.
국회법은 이런 민감한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중요한 안건에 대해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무기명 비밀투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부 농촌당 의원들은 사석에서 “비밀투표를 하면 내가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을 지역 주민이 모르게 된다”고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국회의 적법 절차’를 무시한다면 그 자신의 존립 근거도 함께 무너진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부형권 정치부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