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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오명철/‘라면 大長今’

입력 | 2003-12-09 18:51:00


한국인에게 쌀 다음으로 익숙한 식량은 라면이다. 쌀이 수천년 동안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인 데 비해 라면은 불과 40년 만에 제2의 주식이 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라면은 총 37억개로 국민 1인당 80개씩 먹은 셈이다. 이는 에베레스트산 8만3635개 높이에 해당하고, 면발을 이으면 지구 둘레를 4616바퀴나 돌 수 있는 양이다. 봉지면, 용기면, 생면 등으로 진화한 라면은 연간 매출액이 1조3000억원에 이르고 종류도 160여 가지나 된다. 스님들을 위해 마늘 실파 등 오신채(五辛菜)를 넣지 않은 라면도 있다.

▷라면 한 봉지는 보통 120g으로 520Cal 내외의 열량을 갖고 있다. 개당 75가닥의 면발로 되어 있고 총길이는 50∼60m에 이른다. 반죽을 눌러 빼는 중국 납면(拉麵)의 일본식 발음인 ‘라멘’이 라면의 어원.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라면은 일본이 원조다. 1958년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가 튀김요리 과정을 관찰하던 중 라면제조법을 생각해냈다. 국내에 라면이 소개된 것은 1963년 9월 ‘치킨 라면’이 최초. 당시 가격은 10원으로 나면(羅綿)으로 오인해 옷감인 줄 아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한 가지 재료가 이렇듯 다른 맛을 낼 수 있을까? 용기 물 불 첨가물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 라면의 맛이다. 군에 다녀온 남자들은 야간근무 후 반합에다 끓여 먹는 라면 맛을 으뜸으로 친다. 겨울에 조개탄을 태우는 난로 위에 양은 주전자를 올려놓고 그 안에서 끓여 내는 라면 맛 또한 기막히다. 그릇이 없을 때는 라면 봉지를 뒤집어 손바닥에 장갑처럼 끼워 라면을 먹기도 한다. 인터넷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라면 요리법과 30년가량 하루 세끼 라면만 먹고 산 사람 등 ‘라면 마니아’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내외국인 9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라면 요리왕 선발대회’에서 ‘라면을 이용한 건강 3코스 요리’를 선보인 한국조리과학고 2학년 곽호일군(17)이 대상을 차지했다. 첫 코스는 한약재와 인삼, 대추를 넣은 라면그라탱을 치즈와 김으로 싼 다음 닭 가슴살로 한 번 더 싸서 한입 크기로 만든 요리. 이어 라면샐러드를 붉은색과 노란색 라이스페이퍼로 싼 요리가 나왔고, 라면을 꿀에 버무려 땅콩 호두 아몬드를 묻힌 디저트로 마무리했다. 가히 ‘라면 대장금’다운 솜씨다. 장안의 인기 드라마 ‘대장금’의 무대인 조선조 중종 때 라면이 있었더라면 장금이와 한상궁은 과연 어떤 솜씨를 보였을까?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