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주차장에는 고급 승용차보다 소형차나 승합차가 더 많아요. 그러나 주민들이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려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어 마음만은 모두 부자에요.”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4동 한라마을에 있는 주공아파트 3단지에서는 노인을 위한 잔치가 자주 열린다.
아파트부녀회는 설날과 정월 대보름, 삼복, 추석 등 명절과 절기(節氣)마다 전통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 또 바자회와 장터 등을 운영해 생긴 수익금은 대부분 노인과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아파트 1단지(영구임대아파트) 1200가구에 자녀 없이 쓸쓸하게 혼자 사는 노인과 모자(母子)가정 등이 입주해 있기 때문이다.
부녀회는 정성스럽게 밑반찬을 만든 다음 자녀에게 노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방문해 안부 인사와 함께 반찬을 전달하고 오게 한다. 어릴 때부터 웃어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7월 서울 영등포역 승강장에서 어린이를 구하려다 새마을호 열차에 치여 발목이 잘리는 중상을 입은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42)도 이 아파트 125동에 산다.
박연화씨(42·여)는 “몸은 불편하겠지만 김씨가 다시 웃는 얼굴로 철도원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주민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주민노래자랑대회가 열리는 3월이 되면 이 동네에 있는 노래방은 노래를 연습하려는 주민들로 꽉 들어찬다. 일부 주민은 무대에서 입을 옷을 구입하려고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는 등 저마다 갈고 닦은 노래실력을 뽐내기 위해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이 아파트에는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음식물쓰레기 수거 차량이 다니지 않는다. 부녀회가 환경보호를 위해 인천 강화군에 있는 오리농장과 계약을 맺어 각 가정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찌꺼기를 사료로 제공하고 있다.
부녀회원들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탈북자 25명을 돕기 위해 21일 중4동 주민자치센터 강당에서 손수 만든 음식과 전통차를 파는 일일찻집을 열었다. 수익금은 맛깔스런 김장김치를 담가 남녘의 온정을 전달하는데 쓰기로 했다.
부녀회장 박경희씨(41)는 “가진 것이 많다고 남을 멸시하는 모습을 우리 동네에서는 볼 수 없다”며 “주민들의 훈훈한 미담과 선행 등을 담은 소식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한주택공사가 지어 1995년 5월 첫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는 24∼26평형 11개 동(棟) 1201가구로 구성돼 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