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얼마 전 매달 20만원이나 내는 ‘고액’ 종신보험에 덜컥 가입했다.
2, 3년 전만 해도 ‘늙으면 적게 먹고 적게 쓰면 되지, 무슨 욕심은…’이라며 노후에 무심했었다. 그런데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이 들어 큰 병 걸리더라도 주변에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할 텐데. 뭔가에 홀린 듯, 허겁지겁 여든 살까지 보장된다는 보험을 찾았다.
동창들을 만나도 단연 화제는 ‘노(老)테크’로 쏠린다. 아직 마흔 안팎인데. 자식에게 부담 안 주려면 10억원은 필요하다느니, 노후 생활비의 80%는 연금에서 받아야 한다느니, 여자는 늙으면 병이 많아 돈이 더 많이 든다느니 등등.
종신보험의 눈부신 성장을 보면 우리 세대의 노후 불안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상품은 3년 만에 무려 650만건이나 팔려 보험업계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가입 연령도 낮아져 30, 40대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확대되고 있다.
‘재테크’가 현재를 위해서라면 ‘노테크’는 먼 훗날을 위한 것이다. 자식에게 기댈 수 없게 된 지 이미 오래고, 퇴직금조차 못 믿을 ‘386 명예퇴직’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런 면에서 국민연금은 젊은 날 저축해 노후 자립을 준비하게 하는 사회보장 장치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내 연금에 대해 물어보았다. 월 32만4000원씩 430개월, 그러니까 35년 이상을 부어야 한다. 원금만 약 1억4000만원. 63세부터 죽을 때까지 매달 120만원(현재 화폐가치)씩 받을 수 있다. 평균 수명까지 산다면 괜찮은 거래인 듯.
그런데 며칠 전 TV에서 속을 뒤집어 놓는 광고가 나왔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국민연금. 고치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은 소득의 30%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혜택을 조금만 줄입시다.’
돈을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는 홍보성 광고였다. 바로 2025년 전후 연금을 받게 될 우리 세대가 타깃이다.
단지 약속보다 월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최고 80% 가까이 더 내고, 연금을 10% 가까이 덜 받는다는 것만이 못마땅한 것은 아니다. 부실하게 연금을 관리해 온 책임은 일언반구 없이 ‘당신들이 양보하라’는 적반하장식 주장이 문제다.
더 부아가 난 것은 ‘다음 세대에 짐이 되지 말자’식의 화법이다. 가입자들은 모두 처음 약속을 믿고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 보험료를 내며 노후를 준비해 온 사람들이다.
당초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를 정착시킨다며 다음 세대의 ‘노후 자금’을 당겨다가 현 세대에 미리 지급토록 함으로써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놓았다. 그리곤 이제 성실한 30, 40대 가입자들을 ‘늙으면 짐이 될 존재’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장래를 걱정할 때, 203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23.1%나 되고 생산인구 2.8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린다’는 통계도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이런 설득은 세대간 갈등만 조장한다.
가장 큰 불안은 연금제도 손질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노후대책이 불투명하면 ‘미래의 고령자’들은 지갑을 굳게 닫게 된다. 이미 고령화가 진전된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돈을 쓰지 않아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고령화시대에는 고령자들이 ‘죄인’이 아니라 행복한 주인공이 돼야 한다.
이영이 위크엔드팀장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