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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山別曲]남원 '운상원 소리터' 운영 김무길 박양덕부부

입력 | 2003-11-05 18:27:00

볕이 따스한 가을날, 김무길씨(왼쪽)와 제자들이 ‘운상원 소리터’ 뜰에 나와 풀냄새와 바람을 벗해 산조 한마당을 합주했다. 오른쪽의 장구를 잡은 사람이 김씨의 부인 박양덕 명창. -남원=유윤종기자


전북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을 출발한 차는 지리산 자락을 돌아 남원시 운봉읍으로 향했다. 가깝고 먼 능선마다 단풍이 울긋불긋했다.

“흥부 살던 곳이 운봉과 함양 사이 어디라고 ‘흥부가’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거문고 명인 김무길씨(60·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가 말했다. 춘향의 고장에서 흥부의 고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묘했다.

차는 ‘운상원(雲上院) 소리터’에 멈추었다. 탄성이 나왔다. 버려질 뻔했던 시골 폐교가 말끔하게 새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김 감독의 부인 박양덕 명창(56·국립민속국악원 지도위원)과 제자들이 나와 맞아주었다.

‘운상원 소리터’ 앞에 선 거문고 명인 김무길씨(오른쪽)와 부인 박양덕 명창.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동반자이자 같은 꿈을 가진 벗”이라고 말했다. -남원=유윤종기자

“운상원은 운봉의 옛 이름이에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 거문고 중시조인 옥보고(玉寶高)가 50년 동안 이곳에서 제자들을 기르며 30여편의 곡을 썼죠. 그러니 남원은 판소리의 성지(聖地)일 뿐 아니라 거문고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옥보고의 자취를 기리며 거문고의 중흥을 기대해보자는 생각을 ‘운상원 소리터’란 이름에 담았습니다.”

지난해 10월 3000여평의 폐교를 사들여 200명이 묵을 수 있는 숙소와 연습실 세미나실 소공연장 등으로 개조했다. 운동장에는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었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10억원이 넘는 서울 방배동 집도 팔았다. 초년 고생을 딛고 간신히 마련한 집이라 주위에선 ‘별일 다 본다’고 했다.

“60년대까지는 당시 인기 있던 ‘여성국극’ 반주 악사로 생계를 꾸렸죠. 국극 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지만 국극이 사라지니까 살길이 막막하더라고요. 배관 책을 달달 외우고 경력을 꾸며 사우디아라비아에 기술자로 나갔죠.”

귀국한 뒤에도 분식집 운영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79년에야 국립국악원에서 궁중 정악 외에 민속악을 받아들이면서 수석 악사로 들어갔다. 뒤늦게 실력 발휘할 기회가 마련된 셈.

음악계의 인정은 그렇게 늦었지만 사실 그는 고교시절 거문고 산조의 두 대가인 한갑득과 신쾌동을 모두 사사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먼저 한갑득 선생님에게서 배우다 서울국악예고에 들어가 신쾌동 선생님에게서 배우니 난리가 났죠. 의절하겠다는 소리도 나오고…. 일생을 바친 소리를 제자에게 전해주었는데 경쟁자 집을 기웃거리니 화가 안 나겠어요.”

2001년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그는 한 해 먼저 내려온 아내를 따라 자리를 잡았다. 오래 잊고 있던 옥보고의 자취가 지리산 자락에서 전해져오는 듯했다.

예전부터 그는 ‘우리 음악은 자연을 벗하며 익혀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매년 전남 구례 화엄사의 연기암에서 1년에 두세 달씩 제자를 가르쳐왔다. 정착할 곳을 찾던 중 신라시대 운상원 터 근처에서 맞춤한 폐교를 찾아낸 것.

“깊은 산, 창호지에 달빛이 비치는 밤에 뜯는 거문고 소리에는 도시에서 얻을 수 없는 향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자연 속에서 배움에 전념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올해 처음 60여명의 학생이 찾아왔다. 전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부인의 제자들도 찾아와 소리를 익히고 있다.

“12월에는 경연대회를 포함한 ‘옥보고 거문고 대회’를 엽니다. 그동안 가야금 경연대회는 많았지만 거문고만의 경연은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이 근처 어딘가 묻혔을 옥보고 선생도 기뻐하겠지요.”

남원=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김무길 약력 ▼

△1943년 서울 출생

△1979년 국립국악원 수석 악사

△1985년 독일 베를린음악제 참가

△1986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장원

△1996년 한갑득류·신쾌동류 거문고산조 CD출반

△2001년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