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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재신임’ 이렇게 끌고 가선 안 된다

입력 | 2003-10-12 18:32:00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재신임을 묻게 된 배경을 다시 설명하며 그 책임이 국회와 일부 언론에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납득하기 어렵고 적절하지도 않은 언급이다. 측근 비리 의혹으로 자신의 도덕성이 훼손돼서 신임을 묻는 것이라더니 하루 만에 말을 바꿔 야당과 언론으로 화살을 돌린 모양이 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재신임을 이용해 정국구도를 개편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며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국민투표 방안에 대해서도 “이를 받아들이면 술수에 휘말리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결단이 폄훼되고 있다고 할지 모르나 ‘재신임 정국’을 이런 식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 대한 노 대통령의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드 인사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인식 가지고는 신임을 백번 물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과연 야당과 일부 언론 때문에 국민 지지율이 20%대를 맴돌고 있다는 말인가. 국민이 주목하는 것은 재신임 여부에 앞서 대통령의 그 같은 요구가 얼마나 뼈아픈 자기성찰에서 나왔느냐 하는 점이 라고 본다. 반성이 있어야 재신임 이후의 정치와 국정에 대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각과 대통령비서실의 일괄 사표 반려 ‘소동’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자신들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지 모르나 의례적인 처신으로 보지 않을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각 총사퇴 표명 소식에 애꿎은 국민만 한 차례 더 놀랐을 뿐이다.

노 대통령과 내각은 면도날 위를 맨발로 걷는 심정으로 이 정국을 끌고 가야 한다. 재신임 방법과 시기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결정된 것이 없는 가운데 새해 예산안을 비롯한 경제와 민생의 시급한 현안 또한 차질 없이 처리해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언행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