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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410…낙원으로(27)

입력 | 2003-09-03 17:54:00


“나는 생리가 계속 없어서 임신 안 할 줄 알았는데, 배가 묵직해서 검사받았더니 임신이라고 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어. 그래도 손님은 받아야 하니까, 어느 날, 아침부터 서른 명을 상대했더니 배가 아프면서 태아가 흘러나오더라고, 벌써 오래 전에 죽었는지 머리도 눈알도 뼈도 다 녹아서 해삼처럼 흐물흐물한 거야. 그런데 고추는 제대로 붙어 있었어. 저기, 저 빨간 봉숭아 피어 있는데, 저기 파고 묻어 줬어…이제 다 말랐겠지.”

여자는 바람에 흔들리는 위생 색을 하나하나 뒤집어 집게로 집고는 다시 앉았다.

“참 그렇지, 너한테 사유리 옷 주면 되겠다. 제일 친하게 지내서 유품으로 받아 뒀는데, 사유리는 몸이 작아서, 내가 입을 수가 있어야지. 너한테는 딱 맞겠다. 나중에 방으로 가져갈게. 검정 뉴똥 치마에 하얀 비단 저고리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조선에 돌아갈 때 입어.”

“사유리는 임신한 거 계속 숨기고 있었지.”

“지금 군의관은 열심이지만, 그 전 군의관은 항상 물통에다 술 담아 다니면서 마셔댔으니까 눈을 속이기가 쉬웠잖아. 산달에 가까워서야 들켰지. 사유리는 시미즈 조장이 꿈에 나타났다면서 시미즈 조장 아이라고 했지만, 다들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누구 아인줄 어떻게 아느냐고들 웃어댔지, 그런데 태어난 아기의 눈매하고 입가가 시미즈 조장하고 꼭 닮은 거야. 시미즈 조장도 소매 걷어붙이고 열심히 청소도 하고, 지나 사람한테 계란 사서 먹여가면서 정성을 들였는데, 군에 찍혀서 그만 전선으로 쫓겨 갔어. 전쟁 끝나면 같이 살자고 약속하고 떠났는데,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이름은 시미즈 조장이 야마토(大和)라고 지어서, 시미즈 야마토.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못 돼서, 자식 없는 어떤 지나인 부부한테 오비(허리띠) 하나 받고 양자로 보냈는데, 한밤중에 우유를 전혀 안 먹는다면서 데리고 왔잖아. 그래서 사유리는 젖을 물렸는데, 어느 날부터 발길이 뚝 끊어져서, 청소하는 노동자한테 가서 무슨 일인지 좀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집에 아무도 없더래.”

“시미즈 조장이 찍은 야마토 사진 보면서, 만날 울기만 했어. 산후 조리를 제대로 못 해서, 거기서부터 배꼽까지 누렇게 곪은 데다 얼굴까지 누렇게 되더니 통증을 참을 수가 없어서 노동자한테 아편을 사들였지. 주사 바늘 하나 찌를 데도 없을 만큼 피부가 딱딱해졌어.”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