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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399…낙원으로(16)

입력 | 2003-08-21 18:19:00


쉭 쉭 쉭 쉭, 쉭 쉭 쉭 쉭, 또 터널이다, 밀양역을 지나 어디로 가는 거지? 캄캄한 구멍이 점점 커지고, 뽀오오오옥! 소녀는 머리에 검정 주머니를 뒤집어쓰듯 어둠으로 들어가고, 고- 삐익 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모든 소리가 꺼졌다. 완전한 침묵이었다. 나, 죽은 건가, 하고 멍하니 생각하는데 다시 쉭, 쉭 쉭,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소리와 흔들림이 되살아나면서 뽀오오오옥! 기적 소리가 터널을 다 빠져나왔다는 신호라고 생각하는 순간, 빠빠빠, 빠빠빠, 빠빠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빠빠, 기상나팔 소리로 바뀌었다.

소녀는 눈을 떴다.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아직도 흔들리고 있다. 쉭 쉭, 쉭 쉭, 아직도 머리칼에는 연기가 남아 있고, 고막에는 기적소리가 남아 있는데, 탕 탕 탕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 소녀는 옆에 누워 있는 언니의 몸에 바짝 달라붙었다.

“나미코, 코하나, 일어나. 곧장 마당으로 안 나오면 얻어맞아.”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미코? 코하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지-잉 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되살아나, 나미코와 코하나는 등을 돌리고 발치에 둘둘 말려 있는 속바지를 다리에 꿰었다.

어젯밤, 군의관이 헤치고 들어온 국방색 모포를 들어올리고 나무문을 열자, 얼룩덜룩한 간편복을 입은 여자들이 두 줄로 서 있고, 여자들 앞에는 아버지와 총검을 든 병사들이 서 있었다. 노란색, 살구색, 초록색, 연두색, 주홍색, 파란색, 하늘색, 나미코하고 같은 빨간 색도 있고, 코하나와 같은 보라색도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열여덟, 열아홉, 스물…나보다 나이는 많겠지만, 그래봐야 다들 십대다. 너무 아파 다리를 벌릴 수 없는 나미코는 코하나의 뒤를 따라 어린 강아지처럼 불안한 걸음으로 걸어 맨 끝줄에 섰다.

“우향우, 천황폐하께 경롓!” 병사가 구령을 붙이자 여자들은 일제히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합하여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했다.

하나, 우리들 황국신민은 충성으로 군국에 보답한다.

둘, 우리들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하여 단결을 공고히 한다.

셋, 우리들 황국신민은 인고와 단련으로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한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