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경영을 개척해 ‘한국의 잭 웰치’란 별명을 갖고 있는 손욱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사진작가 박창민씨
삼성전자 기흥단지에 가면 아름다운 정원에 우뚝 선 현대식 건물이 나타난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 나온다는 삼성종합기술원이다. 15년 전 고 이병철 회장은 기술원에 자신의 집무실을 만들고, 고급 기술자 집단을 키우고자 했다. 아쉽게도 준공 한 달 후 이 회장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손욱 삼성종합기술원장(57)은 첨단기술에 대한 이 회장의 유지를 이어 850명의 연구진을 이끌고 있다. 5∼10년 뒤 삼성 계열사가 먹고 살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계열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적 난제를 푸는 게 기술원의 일이다. 기술원은 민간 최대의 연구소이고 전체 연구원 중 380명이 박사이지만 정작 원장은 박사학위는커녕 학사 졸업장밖에 없다.
“물론 전문 지식은 박사를 못 따라갑니다. 그러나 박사가 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적어져 기술융합시대에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손 원장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듯이 수많은 첨단기술을 꿰어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 것인지 연구원들이 생각토록 하는 게 내 일”이라고 말한다.
최근 벤처기업의 몰락도 기술은 있지만 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기술이 제 가치를 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달 한국에 왔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츠와 기 소르망도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취약한 기술 경영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 점을 그는 상기시킨다.
삼성의 ‘기획통’, ‘혁신통’으로 통하는 그는 80년대 중반 삼성전기의 기술연구소장으로 일할 때 20여개의 신규사업을 성공시켜 국내 최고의 종합부품회사로 만들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삼성SDI 대표이사로 일할 때에는 ‘프로세스 혁신’과 ‘6시그마’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회사의 경영 위기를 돌파했다.
4년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이 된 그는 기술원도 혁신 중이다. 좋은 기술을 가진 전문가는 많으나 이를 융합해 시너지를 내는 데는 취약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기술경영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GE의 경영품질혁신 방식인 ‘6시그마’를 연구개발 분야에 처음 도입했다. 또 기술 분야간의 융합을 위해 조직을 매트릭스 체제로 전환하고, 연구원 1인당 10명의 세계 고수와 네트워크를 구축토록 했다.
현재 기술원 연구원의 연평균 교육시간은 100시간. 1인당 교육비는 250만원으로 미국의 유수한 기업인 GE나 시스코의 교육비를 능가한다. 삼성의 반도체가 세계 최고가 된 것도 이런 체계적인 기술 관리 시스템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34년 동안 기술은 물론 기획, 판매, 마케팅, 전략 분야에서도 일한 것이 기술경영자가 되는 데 큰 보탬이 됐다”고 한다. 또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3년 동안 지방의 현장 근무를 자청해 거의 모든 기계를 다뤄 본 것이 평생 큰 자산이 되고 있다.
또 하나 그의 저력은 왕성한 독서에서 나온다. 특히 역사책을 많이 본다. ‘전통 속의 첨단공학’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가끔 “책을 몇 가마니 읽었느냐”고 물어 부하 직원들을 질리게 한다. 기획부서에서 일할 때는 일본 마쓰시타의 기업경영에 대한 책을 150권이나 읽었다.
그는 “지금까지 과학기술자의 노력에 힘입어 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그 주역이 누구인지를 한국 사회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공계 기피의 원인을 진단한다. “소득이 2만달러가 되려면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강력한 조처가 필요합니다. 우선 연구원은 군대를 면제해 주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면 전액 학비를 지원해야 합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손욱 원장은▼
1945년 경남 밀양 출생. 1967년 서울대 공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한국비료공업과 한국종합제철을 거쳐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전기 기술연구소장을 거쳐 1993년 삼성의 신경영 선포 때 이건희 회장을 도와 비서실에서 일했다. 이어 삼성전자 전략기획 담당 부사장, 삼성SDI 대표이사를 거쳐 1999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에 취임했다. 별명은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신념대로 이루어낸다고 하여 ‘흔들바위’. 산업계 및 정부기관에 6시그마를 확산시켜 ‘6시그마의 전도사’로 알려진 그는 서울대에 개설한 기술경영전략 과정을 통해 올봄부터 대학에도 6시그마를 전파하고 있다.
△좌우명=진인사 대천명 △인상 깊은 책=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