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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337…아메 아메 후레 후레(13)

입력 | 2003-06-09 18:43:00


어젯밤에도 그 남자는, 에이코는 만날 멍하고 있네, 머리 나사가 하나 풀어진 것 아이가, 라고 말했다. 나는 멍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공기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관찰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아무 목적 없이 이리저리 이동하는 공기를, 아무 목적 없이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아니, 목적이 있다, 그 남자와 한방에 있기가 싫어서 울고 싶을 때, 가만히 공기를 바라보면 눈 속에 무수한 반점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눈물 때문에 번져 보이지만, 점차 또렷해지면서 무지개색이 되면 내 마음도 텅 비고, 마음이 텅 비면 슬픔 같은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우물물을 뜨러 가서도 공기를 바라보고, 다듬이질을 하면서도 공기를 바라본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텅 비니까….

재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늘 내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남자가 하라는 대로. 그 남자에게 나는 한 푼의 가치도 없을뿐더러, 지참금을 얹어서라도 내쫓고 싶은 의붓딸이다. 이제 열네 살이나 되었으니까 하루 빨리 시집을 가라고 하지 말고, 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을.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내 백일잔치도 못 치르고 죽은 아버지….

저녁놀이 사라지자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제 그만 돌아가지 않으면 꾸중을 듣는다, 고무줄을 주어 둘로 접고 다시 접고 또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지만 일어설 수가 없다. 졸졸졸졸 땡 땡 음매 음매 치르르르 치르르르 아이스 케이키 아이스 케이키 음매 음매 딸랑딸랑, 솜으로 싼 것처럼 뿌옇게 들리는 온갖 소리 속에서, 우곤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고맙다! 힘주어 종을 치면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진동하는 것처럼, 내 가슴은 그 사람의 목소리에 떨고 있다. 큐큐 파파, 두근두근, 그 사람의 호흡과 고동이 내 안에서 울리고 있다. 검고 날카로운 눈매, 웃으면 커다란 앞니가 들여다보이는 입, 분노도 기쁨도 전체로 표현하는 얼굴,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에이코는 갓 부풀기 시작한 젖가슴을 두 손으로 껴안고 한숨을 토했다. 한숨이 몸과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켰을 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