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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現地서 보는 이라크전쟁]중동학자 e메일 좌담

입력 | 2003-04-14 19:14:00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라크전쟁에 대해 정작 중동지역 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요르단 페트라대학의 소장파 학자인 왈리드 알 아나티 교수(아랍어문학·31)와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의 저명학자인 아이라 샤르칸스키 교수(정치학), 박종평 한국외국어대 중동문제연구소장이 14일 e메일로 좌담을 가졌다. 이번 좌담에서도 중동평화를 둘러싸고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시각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전쟁에 대한 평가

▽박종평 교수=이라크전쟁이 예상보다 단기전으로 끝났다. 이번 전쟁은 군사적으로 승리했지만 유엔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정당성과 명분을 상실했다. 또 프랑스 독일 러시아 및 아랍 국가들의 반대와 세계적 반전운동으로 미국의 리더십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주도권 논란이나 명분 싸움보다 이제 더 중요한 과제는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 것과 전후 이라크복구사업을 순조롭게 추진하는 것이다.

▽왈리드 교수=미군이 아직도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이번 전쟁이 명분 없는 전쟁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요르단 국민은 이번 전쟁에 반대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이 일부 젊은이들은 연합군에 대응하기 위해 이라크로 입국했다. 내 친동생도 이라크군에 합류하기 위해 떠났지만 아직 생사여부에 대한 소식이 없어 안타깝다. 바그다드 함락은 단순한 정권 붕괴나 종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문명의 요람이 파괴됐다는 점에서 아랍권이 분노하고 있다. 바그다드는 중세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라쉬드’ 통치 시절 수도였으며, 문명의 요람이다. 아랍민중은 위대한 수도 바그다드 유린과 함락에 매우 슬퍼했다. 또한 앞으로 우리는 저 위대한 아랍시인 ‘무타나비’ 거리를 미군이 군홧발로 유린하는 것을 목도하며 더욱 슬퍼하게 될 것이다.

▽샤르칸스키 교수=현재로선 이번 전쟁의 결과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번 전쟁은 중동의 평화가 정착돼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아직도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전체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라크에서 날아올지도 모르는 미사일 공격 때문에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다. 9일과 10일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충돌이 발생해 불안한 상황이다.

▽왈리드 교수=이번 전쟁이 요르단 사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 주는 참담함과 공포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형제국가가 입게 된 참상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번 전쟁으로 자괴감과 상실감이 극심하다. 뿐만 아니라 요르단 경제도 타격을 받았다. 요르단은 수출입의 대부분을 이라크에 의존하고 있다. 전쟁 전 이라크로부터 원유를 수입했고, 그중 50%는 무상으로, 나머지는 절반가격에 수입하고 있었다. 전쟁의 충격으로 요르단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전쟁으로 인한 관광수입 감축도 경제력 저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동국가간의 분열

▽박 교수=1991년 걸프전 때에는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이 전쟁에 찬성했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각자 이해관계가 달라 입장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특히 국민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대다수 아랍 정부들은 과거와는 달리 분명한 반전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앞으로 중동지역 국가간의 협력 또는 분열양상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왈리드 교수=이번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간에는 이견이 적지 않았다. 요르단과 시리아는 이라크 문제에 대한 어떠한 개입과 영향력 행사도 반대했다. 반면 대부분의 아랍연맹국가들 특히 이집트 카타르 쿠웨이트 등은 미국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앞으로 아랍 정부들간 의견일치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전쟁에서도 드러났듯이, 대부분이 지역 공동체보다 자국의 이익을 더 중시하고 있다. 이라크 재건사업에서도 자국 이익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샤르칸스키 교수=이번 전쟁을 통해 아랍지역이 과격파와 온건파로 좀 더 분명하게 갈라지는 분열양상을 보일 것이다. 문제는 과격파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더 수그러드느냐, 아니면 더 과격해지느냐는 것이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슬람권이 서방세계, 특히 이스라엘에 예전보다 강한 적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박 교수=벌써부터 미국은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를 재건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현재 군정과 과도정부, 그리고 선거에 의한 민주정부의 수립을 구상하고 있으나 성공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아랍인들의 반미감정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국내 정치개혁이 얼마나 이라크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가 숙제로 남는다. 이라크 안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이민족인 쿠르드족으로 구성된 복잡한 사회구조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요즘 재건을 둘러싼 논의가 전쟁 주동 국가들이나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으나 정작 필요한 것은 이라크만을 위한 재건 계획이다.

■포스트 후세인 이라크

▽왈리드 교수=이번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에 걸쳐 이라크를 완전히 장악하고 미국주도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본다. 그 결과 이라크의 새 정부는 앞으로 시리아와 이란 정부에 큰 위협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또 부시 정권은 자국 이익을 위해 이스라엘-이라크-쿠웨이트 삼국 동맹 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들은 침략자 미국을 절대 용납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국민은 1920년 식민군대 영국군을 철수시켰던 것처럼 미군이 완전 철수할 때까지 저항할 것이다.

▽박 교수=하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 국민들은 반(反) 후세인을 외치며 정권 붕괴를 환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왈리드 교수=반미(反美)와 반 후세인 현상을 동일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지난 20년간 후세인은 철권통치를 해왔다. 이라크 국민들이 그런 억압에서 해방된 것을 환영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군을 해방군으로 맞아들인다고는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 미국의 식민지나 점령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샤르칸스키 교수=중단기적으로는 이라크가 국제사회에서 모범적이고 건설적인 일원이 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않는다. 또 이라크 내부적으로 남아있는 강한 의구심과 적대감이 국가건설을 방해할 것이다.

▽왈리드 교수=지난 25년간 이라크는 전쟁과 경제제재 조치라는 큰 고난을 겪었다. 현재 이라크는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회 기초환경이 열악한 상태다. 의료시설 부재와 수로 파괴에 통신두절 등 열거하기 힘들다. 이라크 재건 프로그램은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들의 의무이자 최대 과제다.

▽박 교수=재건 비용이 문제다. 이미 미국과 영국 기업들은 이라크 재건사업 계획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미국이 일부 유엔국가나 걸프연안국, 그리고 유럽연합측에 이라크 재건 비용을 지불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실제로 이미 미국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일부 이라크 채권국들에 채권 포기를 권고한 바 있다.

■미국주도의 중동전략

▽왈리드 교수=미국은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석유 수입으로 미군의 전비를 확충할 것이다. 또 이번 재건 사업을 통해 미국은 다음의 4가지를 실현하려 할 것이다. 첫째는 미국 내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재건사업에서 미국기업을 중심으로 미국산 원자재를 사용한다면 이는 실업 해결과 미국경제 회복을 모두 달성할 수 있다. 또 미국의 중동 내 정치력을 강화할 수 있으며, 넷째는 이라크뿐만 아니라 세계 유가를 통제할 수 있다.

▽박 교수=석유와 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 문제의 핵심이다. 석유를 둘러싼 분쟁은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수면위로 노출됐는데 군사력으로 해결된 선례라는 점에서 분쟁의 소지는 계속 남아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팔레스타인국가 건설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중동의 영구적 평화는 없을 것이다.

▽샤르칸스키 교수=나는 영국 유럽 유엔 그리고 미국까지도 아랍인들을 달래기 위해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스라엘에 양보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본다. 그것이 이번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에 이스라엘인들이 걱정하는 점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과격주의를 저지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이 테러 도발을 중지하는 근본적 양보를 해야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왈리드 교수=그동안 미국 정부는 늘 이스라엘 입장에 서 왔고 유엔에서도 각종 거부권을 행사하며 이스라엘을 도왔다. 이번 전쟁의 주된 이유 중 하나도 미국의 경제 부흥과 중동에서의 이스라엘 세력 강화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이 앞으로 얼마나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중립적이고도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느냐가 중동평화의 열쇠다.

▽박 교수=이번 전쟁은 미국이 중동전략을 수행하는데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하다. 미국은 석유의 안정적 확보와 이스라엘 안전보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미국식 세계화를 중동에 심으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의 민주화 바람도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의 중동전략이 완성되려면 아직도 많은 분쟁과 갈등의 소지가 남아있다. 미국은 끊임없이 ‘미국식’을 밀어붙이겠지만 그에 대한 저항과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리〓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좌담자 프로필▼

▽박종평

―1948년생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졸업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드대학 유학

―한국외대 중동문제연구소장,

아랍어과 교수(중동정치)

▽아이라 샤르칸스키

―1938년 미국 출생

이스라엘 국적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위스콘신대, 조지아대,

플로리다대 교수 역임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정치학)

▽왈리드 알 아나티

―1972년 요르단 암만 출생,

부모는 팔레스타인 출신

―국립요르단대 아랍어문학 박사

―요르단대 교양교수 역임

―페트라대 교수(아랍어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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