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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2003 공안검사]공안검사들의 세계

입력 | 2003-04-11 10:27:00


최근 23년간의 검사 생활을 접고 명예퇴직을 신청한 이 검사는 실명 인터뷰를 허락했다. 그는 공안업무 가운데 특히 ‘대공’이 주특기였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간첩이 한 명도 안 잡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검찰청에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구체적인 통계를 밝히기 곤란하다’고 하더라.

“간첩사건 수사는 어렵다. 관련자가 다수인 데다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제3국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증거 수집이 어렵다. 옛날에는 단파방송 수신기나 마이크로 필름과 같은 증거를 남겼지만 지금은 기밀을 탐지해 전화만 하면 끝이다. 물증이 없어 자백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자백을 받는가.

“간첩사건은 진술이 1000마디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의미있는 첫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북에서 온 것 맞느냐?’ ‘아니다’로 시작하면 그 수사는 끝이다. 김현희 수사를 예로 들겠다. 조사를 시작하려는데 마침 밖에서 시위대가 ‘살인마 전두환 이순자 부부를 처단하라’며 데모를 했다. 그 소리를 들은 김현희는 ‘세상에, 인민검찰소 앞에서 전직 국가원수를 죽이라고 소리치다니…’ 했다. 자기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대한민국이 자유가 있는 나라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주 의미있는 첫 진술이었다.”

―기자가 취재원의 입을 여는 것보다 훨씬 힘들겠다.

“문제는 진술의 대부분이 허위 자백이라는 점이다. 형량이 무거운 사건의 자백은 듣지 말라는 말이 있다. 간첩 사건으로 잡히면 최소 무기징역이다.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으면서 ‘검찰이 용공 조작하려 했다’ ‘고문 때문에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사실 시국사범 수사 과정에서는 고문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검찰의 수사기록은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이를 뒤집으려면 고문 주장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사를 했다는 내용을 수사기록 중간 중간에 안전장치로 심어둔다. 서 전 의원 사건을 예로 들면 서 의원이 수사 도중 잘 때 ‘목침을 달라’고 요구했다. 목침이 없어 내 법전을 빌려줬더니 그것을 베고 잤다. 다음날 수사에서 ‘피의자는 어젯밤 법전을 베고 잔 사실이 있느냐’ ‘그렇다. ○○출판사에서 ○○년도에 출간한 법전을 베고 잤다’는 기록을 남겨뒀다. 법정에서 ‘잠도 재우지 않았다’는 등 인권침해 주장을 막기 위해서다.”

―공안검사로서 가장 힘든 점은….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안사건은 잘못되면 체제를 위협할 만큼 피해가 엄청난데도 눈에 보이는 피해자가 없다. 법정에서 피의자의 지인들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보법이나 한총련 문제는 일반 국민들의 공통 관심사가 될 수 없다.”

이 검사는 인터뷰 말미에 “기자와 검사의 공통점이 무엇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박수받기 힘든 직업이라는 점이다. 폭탄주 마실 때만 빼고….”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