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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김기홍/盧정부 정책, 전략이 아쉽다

입력 | 2003-04-03 19:04:00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적 전쟁에 반대한다.” 대학가에 휘날리는 현수막의 내용이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반전(反戰) 성명의 핵심이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인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라크에 대한 파병동의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전이라는 명분보다 국익을 위한 ‘전략적’ 실익을 택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파병과정’ 對美협상 이용해야 ▼

하지만 과연 그 모든 과정과 결과가 ‘전략적’ 차원에서 만족스러운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카드를 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반대를 극복했는지를 온 천하에 알릴 필요가 있다. 파병 결정과 함께 그 파병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게에서 사온 꽃 한 송이와 온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 가져온 야생의 꽃 한 송이, 어느 쪽이 여자를 더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생색이 거짓이 아닌 바에야 생색을 낼 수 있을 때는 한껏 내야 한다.

하지만 그 생색이 먹혀들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조금 더 일관성을 보여야 했다. 속으로는 흐뭇하게 생각했을지언정 공식적으로 국가인권위를 두둔하는 발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평검사와의 대화 수준까지는 못 가더라도 담화는 간절하게 발표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했을 때 ‘보소,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오?’라는 말이 의미와 효과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게 전략적 고려 혹은 협상력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까지 공개적으로 반대를 할 수 있고, 또 그런 반대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현 정부의 덕이다. 이런 평가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지시와 명령보다 토론과 설득을 강조한 노 대통령의 공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전략적 고려의 부족은 여전히 아쉽다. 토론과 설득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국정의 곳곳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도 해소와 정치개혁, 지방분권과 지역산업 육성, 노사관계 재정립 등 현안들이 토론과 설득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당장 외신을 타고 들어온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상계관세 부과 결정, 그리고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통상압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농산물 개방과 교육개방은? 토론과 설득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사정과 상대방의 입장까지 고려한 전략적 고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협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가령 동북아 허브국가 구상과 그 구상의 일부로서 한일 자유무역협정의 가능성이 한일 산관학 공동연구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자리에서도 한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전략적 고려를 들은 일도, 본 일도 없다. 반일감정 하나면 논의 자체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데 순진하게(?) 경제적 분석만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속내를 말하라면 이런 전략적 고려가 없는 세상, 전략적으로 협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제일 좋다. 가령 야당이 특검법을 수정할 것을 ‘먼저’ 믿고 특검법을 수용한 노 대통령의 신뢰는 신선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세상일은 우리와 저쪽, 동지와 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호로서의 전략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고 예측한 반응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다시 모색하는, 그 결과 대통령의 말과 행동까지 자제하는 실천방안으로서의 전략이 필요하다.

▼순진한 외교 실패 가능성 높아 ▼

가령 학생과 시민단체, 국가기관의 파병 반대를 우리의 협상력 제고로 인식하는 것, 경제정책의 실행을 위해 경제 외적인 관점도 함께 고려하는 것, 그래서 대통령의 발언까지 계획하는 것, 그런 관점이 필요하다.

노 대통령은 “요즘 대통령 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를 실행한다면, 최소한 그런 마인드를 가진다면 결코 전임자들의 전철은 밟지 않을 것이다. 바람에 따라 오르내리는 ‘값’이야 무에 그리 중요한가.

김기홍 객원논설위원·부산대 교수 gkim@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