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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서비스기업의 '6시그마 운동'

입력 | 2003-04-01 18:33:00


《경기 용인시 포곡면 삼성에버랜드 본부 건물. 직원들이 드나드는 출입구 눈에 잘 띄는 곳에 커다란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이름하여 ‘6시그마 Q&A’. 기자가 찾은 지난달 27일 아침에는 ‘블랙 벨트’의 의미를 묻는 문제와 답이 붙어 있었다. 삼성에버랜드는 2000년 8월 국내 서비스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본격적인 6시그마 운동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3년, 무엇이 바뀌었을까.》

‘위기를 느끼지 않으면 조직은 변하지 않는다’는 건 경영학에서 상식적인 얘기다. 99년 허태학(許泰鶴·현 삼성종합화학 대표) 당시 사장이 6시그마 운동 얘기를 꺼냈을 때 사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서비스기업이 공장도 아니고 무슨 6시그마냐”는 목소리였다.

그럴 법도 했다. 미국 모토로라에서 처음 고안되고 GE에서 꽃을 피운 6시그마는 주로 제조업 생산라인에서 품질관리를 위한 기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놀이공원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삼성에버랜드는 대표적인 서비스기업. 99년만 해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서비스기업에 6시그마를 적용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구나 당시 에버랜드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는 고객만족 경영대상을 3년 연속으로 수상하는 등 혁신 활동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허 사장은 단호했다. 그는 “국내 서비스기업 가운데 6시그마를 하는 기업이 없어서 할 수 없다니 그럼 2등 하자는 얘기냐”며 밀어붙였다.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의지로 태스크포스(TF)팀이 구성됐고 1년 후 6시그마 운동이 시작됐다. 지난해 5월 바통을 이어받은 박노빈(朴魯斌) 사장은 이를 직원의 평가와 승급에 연결하는 등 본궤도에 올려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01년 ‘삼성에버랜드 내 식당에서 파는 돈가스가 맛이 없다’는 불만이 접수됐다. 돈가스는 에버랜드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식사다. 경영혁신 태스크포스 김헌성 차장은 “예전 같으면 돈가스의 맛이 없다는 게 과연 문제가 되는지,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판단하려는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시 고객 설문 자료와 주방장들의 시식으로 맛이 진짜로 없는지 판단에 나섰다. 그 결과 4개 식당 가운데 두 곳 식당의 돈가스 맛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똑같은 음식 재료와 소스, 조리도구를 쓰는데 왜 맛이 다를까.

주방장을 중심으로 모인 ‘돈가스 프로젝트팀’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밀한 ‘측정’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고기를 굽고 나서 보관하는 시간과 소스를 보관하는 온도가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손님이 기대했던 것보다 돈가스가 덜 바삭거렸던 것이다. 원인이 나오자 문제는 해결됐다.

경기 안성시 세븐힐스 골프장 내 오수처리장의 오염도를 낮추거나, 놀이공원 내 범퍼카의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의자 위치를 조정한 것 등도 6시그마 관련 프로젝트로 해결된 것들이다.

이런 사례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문제에 대한 접근과 해결을 위한 사고 방식의 전환을 보여준다.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사고가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측정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은 품질관리의 대표적인 명제다.

6시그마 운동 전에도 삼성에버랜드에는 경영혁신 활동이 있었다. 바로 고객만족(CS·Customer Satisfaction) 운동이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친절, 즉 고객에게 늘 웃는 얼굴로 대하자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현재 벌이고 있는 6시그마 운동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직원과 고객이 만나는 접점보다는 이를 지원하는 후방의 시스템이 타깃이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거나 음식 맛을 좋게 하는 것은 웃는 얼굴로 해결할 수 없다.

마치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전통적인 장점으로 꼽혔던 정신력을 ‘왕복달리기’ 횟수라는 측정할 수 있는 수치로 바꿔 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정신력을 잴 수 없다면 정신력을 높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삼성에버랜드 외에도 철도청을 비롯해 금융권 등 많은 서비스기업에서 6시그마 운동을 도입했거나 시도하고 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신현숙(申玹夙) 위원은 “서비스기업에서 6시그마 운동은 제대로 적용하지 않으면 자칫 구호에 그칠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실제 100만분의 몇으로 불량률을 끌어내리지는 못하더라도 사고 방식을 바꾸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6시그마 ▼

제품의 결함 발생률을 100만개당 3회 수준으로 낮추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경영 혁신 활동. 통계학에서 ‘±3α 범위 안에 전체 개체의 99.97%가 포함된다’는 이론에서 유래. 한편 벨트는 6시그마 활동에서 품질운동 자격증 보유자를 일컫는다. 블랙 벨트는 태권도로 치면 유단자 수준으로 화이트 및 그린 벨트에 대한 지도와 교육을 맡는다. 그 위에는 마스터 블랙 벨트와 챔피언 등이 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