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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이야기]류청희/지프는 '전쟁의 산물'

입력 | 2003-03-24 18:44:00


지난주 미국이 이라크 공격에 들어가 이라크전쟁이 발발했다.

자동차는 제1차 세계대전에 병력 및 물자 수송을 위해 처음 사용된 이후 군의 필수장비가 되었으며 20세기의 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100여년의 세월 동안 많은 군용 차량들이 개발되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지프(Jeep)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 초반 사이에 미군이 요구한 작전차량 성능 기준에 맞춰 미국의 여러 자동차회사가 군사용 소형 다목적 차량을 개발했다. 그중 밴텀과 윌리스 오버랜드, 포드의 차들이 주로 전장에 투입됐다. 지프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는데 ‘다목적’이라는 뜻의 약자인 GP(General Purpose)로부터 유래했다는 설과, 만화 ‘뽀빠이’에 등장하는 동물이 내는 소리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윌리스 오버랜드는 이 지프를 민간용으로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윌리스가 카이저에, 카이저가 AMC에, AMC가 크라이슬러에 매각되고 98년 크라이슬러와 다임러 벤츠가 합병되면서 현재 지프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지프가 모델명에서 브랜드로 바뀌면서 고전적 형태의 오리지널 지프는 개선에 개선을 거듭했고 오늘날 랭글러라는 이름으로 그 순수 혈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베트남 전에서 사용됐던 미군의 다목적 차량도 통칭 지프로 알려져 있지만 이 차량의 원래 이름은 ‘군용 다목적 전술차량’의 영문 앞 글자를 딴 MUTT였다. 50년대 포드에서 설계 제작하고 60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 차는 윌리스 오버랜드가 지프의 상표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지프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2차 대전에 사용되었던 지프와 쓰임새나 형태가 많이 닮아서, 군인과 일반인들에게는 정식 명칭보다 그냥 지프라는 옛 이름이 애용되었다.

MUTT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인 지프로 불렸던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군용차의 이름은 시간이 흐를수록 친숙하거나 부르기 쉽고 편한 이름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지난 걸프전을 통해 성능을 발휘했던 미군의 현재 주력 군용 차량인 허머(Hummer)의 경우도 ‘고 기동성 다목적 차량’의 약자인 HMMWV가 원래 이름이지만 발음하기가 힘들어 ‘험비’라고 불렸고, 나중엔 미 육군에 납품되면서 허머라는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뛰어난 내구성과 다목적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4륜 구동 차량이지만 ‘살인 무기’로 처음 개발됐고 실제로 전장(戰場)에서 그렇게 쓰인다는 사실은 씁쓸하게 느껴진다.

류청희 자동차칼럼리스트 chryu@auto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