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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언론 취재 갈등]美軍측 "죽기 싫으면 상세보도 말라"

입력 | 2003-03-23 18:53:00


‘알 권리가 먼저냐, 작전수행이 먼저냐.’

22일 쿠웨이트 외곽 힐튼호텔에 마련된 미영 연합군 연합미디어센터에는 ‘기자들이 이라크 국경을 넘다가 지뢰를 밟아 4명이 숨졌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이날 오후 10시(한국시간 23일 오전 4시) 긴급 브리핑이 실시됐다. 공보국장인 가이 실즈 미 육군대령은 흥분한 목소리로 기자들에게 “절대 국경을 넘지 말라”며 사고 소식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최소한 4개 팀의 기자들이 국경을 넘다가 총격을 받아 위성전화로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해 왔다는 것. 이 중 차량 20대와 24명으로 구성된 캐러밴은 구조됐으나 다른 3개 팀의 구조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최소한 3명이 다치거나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와는 별도로 이라크 남부 제2의 도시 바스라로 향하던 영국 TV 취재진 3명이 22일 총격을 받은 뒤 실종됐으며 이라크 북부지방에서는 폭탄이 터져 호주 기자 1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기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선을 넘나드는 것은 미디어센터측이 지나치게 취재를 통제해 미군부대에 접근조차 못하기 때문. 이곳에는 미군과 숙식을 함께 하는(임베딩) 종군기자 프로그램에 들지 못한 각국 기자 1400여명이 등록한 상태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되면서 전황을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려는 취재진과 정보를 통제하려는 미군 당국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임베딩 기자들도 미군의 취재 통제에 불만을 품기는 마찬가지. 페르시아만에 정박 중인 항공모함 키티호크에는 미국 일본 한국 중국 등의 기자 22명이 승선 중인데 “CNN방송에서 본 것 외에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며 “이럴 바에는 항모에서 내리겠다”는 항의가 속출하고 있다.

독일 제1공영방송인 ARD도 22일 “미군이 언론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보도를 방해해 세계 여론이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기자들은 국방부와 백악관에서 직접 정보를 얻어 미국 정부의 공보처 노릇을 해 왔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미군 당국은 언론의 취재 경쟁이 지나쳐 작전 수행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불평한다.

미 국방부는 CNN방송이 공격 개시 불과 1시간도 안 돼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는 바람에 작전수행에 큰 지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미군 지휘관들은 임베딩 종군기자들에게 “죽기 싫으면 전황을 상세히 알리지 말라”거나 “포로들을 취재하지 말라”며 위협하기도 했다.

쿠웨이트=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