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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우린 사하라서 뛴다" 250Km 마라톤대회

입력 | 2003-03-20 17:54:00

사하라 마라톤 출전을 준비중인 동호회 ‘오아시스’ 회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안산에서 배낭을 멘 채 산악 훈련을 하고 있다. 실전 대비를 위해 사하라에서 뛸 복장과 장비를 그대로 갖추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살아오면서 “미친 ×” 소리를 누구보다도 많이 들었다고 ‘자부’하는 건각(健脚)들이 있다. 다음달 6일 북아프리카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열리는 ‘사하라사막 마라톤 대회(Marathon Des Sables)’에 출전하는 24명의 한국인들이다.

사하라 마라톤은 낮 기온 섭씨 50도(밤 기온은 0도)의 모래 사막에서 250㎞를 6박7일 동안 달리는 대회. 주최측이 제공하는 것은 텐트와 물 뿐, 먹을 것과 침낭 등은 참가자들이 메고 달린다. 배낭 무게만도 10㎏이 넘는다. 이 대회 별칭이 ‘지구 최악의 마라톤’이다.

대회 코스도 매년 바뀐다. 그나마 주최측은 대회 며칠 전까지 코스가 어디인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자욱한 모래바람 탓에 한 치 앞도 잘 안 보이는 사막을 참가자들은 나침반과 앞사람 발자국에만 의지해 달려야 한다. 모든 선수들은 ‘대회 도중 만약 내가 죽어도 그건 전부 내 책임입니다’라는 각서를 쓴다.

이 대회에서는 2001년과 지난해 한국인이 한 명씩 완주했다. 올해는 무려 24명의 한국인 도전자들이 지구 최악의 마라톤 정복에 나섰다.

● 왜 달리나

철인3종 경기를 13시간52분에 완주한 강동철인3종 클럽 회장 김경기씨(41·수산물 유통업). 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자동차 정비소 등에서 일한 그는 달리며 생각한다.

“달리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달리다 숨이 멎도록 힘들 때면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한다. 워낙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힘들고 고된 일을 견디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사하라를 달리며 그 고통 속에서 내 인생을 돌아보고 싶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사하라에 간다는 유희(遊戱)파도 있다. 2002년 이 대회에 참가해 이번 참가자 가운데 유일하게 완주 경험이 있는 유지성씨(33·여행춘추 근무).

“왜 가냐고요? 놀러 갑니다. 정말 끝내주게 멋있거든요. 한 번 가보면 ‘황폐한 멋’에 취하고 맙니다. 아, 빨리 사막을 보고 싶네요.”

유씨는 2001년 겨울 ‘내년에 사하라 마라톤에 나갈 거야’라고 결심한 뒤 회사를 그만두고 대회 준비에 몰두했다. “주위에서 기인(奇人)이라고 부르지 않느냐”고 묻자 “글쎄, 그런 사람 못 봤는데요. 변태라고 부르는 사람은 몇 명 있지만…”이라고 답한다.

여성 참가자 두 명 가운데 하나인 김효정씨(28·싸이더스 제작부장)는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본능이 나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강명구씨(22·군 입대 준비)도 “뭔가 모를 힘이 나를 이끌어서”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지난해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48분에 달려 한국 아마추어 마라토너 50걸에 든 강호씨(38·건설시공 기술사)는 “2000년에 처음 마라톤을 뛰었는데 3시간1분만에 들어왔다. 마라톤이 시시한 느낌이 들어 사하라에 도전한다”며 주위 사람들의 기를 죽였다.

● 어떻게 준비했나

사하라 마라톤은 혼자서 준비하기에 겁나고 벅차다는 게 참가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지난해 모임을 만들었다.

2001년 참가자 유지성씨가 관리하고 있는 사하라 마라톤 공식 한국어 사이트(www.smarathon.com)가 모임의 발단이 됐다. 이 사이트를 본 몇몇 마라톤 마니아들은 “함께 사하라 마라톤에 참가하자”며 뜻을 모았고 곧 ‘오아시스(runsahara.com·회장 한규식)’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현재 오아시스에는 개인 회원 외에도 한반도 통일 염원을 공유하며 달리는 ‘DMZ 지뢰 제거반’, ‘제3의 물결’ 등 2개 팀이 꾸려져 있다.

● 각자만의 독특한 훈련법

DMZ 지뢰 제거반 팀장 손종태씨(45·동아일보 광고국)는 평소 양복바지 안쪽에 1.5㎏짜리 모래주머니를 달고, 깔창에 손톱 만한 돌 수십 개를 다닥다닥 붙인 구두를 신고 다닌다. 모래주머니는 다리 힘을 기르기 위해, ‘돌 깔창’은 발바닥을 단련하기 위해 그가 고안한 방법. 손씨는 이 훈련법 덕에 지난해 가을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8㎏ 배낭을 메고 3시간59분만에 풀 코스를 완주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영화제작사 제작부장인 김효정씨는 최근 새로운 영화 촬영에 들어가자 촬영장에서 뭘 하건 항상 뛰어다니는 방법으로 훈련하고 있다.

동호회 회원들은 금요일 밤에 모여 여의도에서 출발, 배낭을 메고 도봉산까지 2∼3시간 ‘가볍게’ 뛴 뒤 세 시간 정도 침낭에서 자고 다음날 출근하는 실전 훈련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동호회 회원 11명이 1박2일 동안 지리산 40㎞를 배낭 메고 뛰어서 종주하기도 했다.

16일 동아국제마라톤 대회에 컨디션 조절 차원으로 출전, 2시간58분에 완주한 오아시스 훈련부장 유영대씨(38·벤처기업 무선인터넷 개발 실장)는 “모두 준비를 철저히 해 회원 대부분이 산길 15㎞ 정도는 배낭 메고 가볍게 뛸 수 있는 수준이 됐다”며 “무리하게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사하라 대회도 모두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질구레한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꼭 필요한 훈련과정. 쌀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되는 알파미(동결 건조 쌀), 극심한 고통을 잊기 위한 진통제, 물만 부으면 스포츠 드링크가 되는 이온음료 가루, 미군전투식량(MRE)과 한국군전투식량(군용 김치비빔밥) 등을 챙긴다.

2001년 참가자 박중헌씨(46·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는 “사막의 나뭇가지와 마른 풀로 불을 때면 되므로 고체연료나 버너도 필요가 없다”며 “최대한 가벼운 상태로 가야 힘을 덜 수 있다”고 했다.

● 사하라의 장애물들

대회 본부는 아직 올해 코스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일정은 6박7일. 매일 20∼80㎞를 달려야 한다. 그날그날 뛰어야 할 거리가 정해져 있다. 2001년에는 하루에 뛰어야 하는 최장거리가 82㎞였다. 기록은 매일 따로 측정해 7일 동안 기록을 합산하는 방식.

출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모래언덕(Dune)과 모래폭풍. 모래언덕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발이 푹푹 빠진다. 하나를 넘어서면 또 하나가 나타난다. 여기에 거센 모래바람까지 불어닥쳐 참가자들은 중심을 잡고 서 있기조차 힘들다.

모래언덕투성이인 사막에서는 앞사람만 보고 뛰는데 갑자기 앞사람이 “길 잘못 들었다”고 소리치면 모두 모여 나침반을 보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

‘할라스 윈드’라고 불리는 모래폭풍도 공포의 대상. 이 바람은 한번 세게 불면 텐트는 물론 집도 날릴 정도로 위력적이다. 참가자들은 터번으로 얼굴을 칭칭 감고 눈을 감은 채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물집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가자들이 물집으로 고생한다. 초반 사흘 동안 발에 10여 군데 물집이 잡히는 것은 보통. 40도를 넘는 일교차와 건조한 날씨 탓에 자주 터지는 코피, 일사병도 무시 못할 장애물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예측을 불허하는 변화무쌍한 사하라의 모습. ‘오늘은 거리가 짧네’ ‘이번 코스는 평탄하네’라며 안심하는 참가자에게 사하라는 모래폭풍과 혹서 등 예기치 않은 시련을 안겨준다.

2001년 참가자 박중헌씨는 “사하라는 사람의 계획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참가자 유지성씨는 “사하라는 교만한 인간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