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현재 가장 유력한 학설은 ‘지구 속에서 왔다’는 것이다. 수억년 동안 화산폭발을 통해 암석 속에 있던 물이 빠져 나와 현재의 바다를 만들었다는 이론으로 1894년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우주에서 온 물이 바다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최근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1986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루이스 프랭크 교수는 “물과 얼음으로 이뤄진 집채만 한 혜성 즉 ‘우주 눈덩이’가 지구 대기권으로 1분에 20여개씩 떨어진다”고 발표했다. 우주 눈덩이는 땅에 닿기 전에 수증기로 바뀐다.
이 이론은 처음에는 비웃음을 샀지만 11년 뒤 위성 사진에서 우주 눈덩이가 확인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랭크 교수는 “우주 눈덩이의 양은 2만년에 지구의 수면을 2∼3㎝ 증가시키며, 지구의 역사를 생각하면 현재의 바다를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수원대 김충섭 교수(물리학과)는 한국물리학회의 ‘물리학과 첨단기술’ 최근호에서 ‘2003년 물의 해’를 맞아 지구와 우주 곳곳의 물의 흔적과 기원에 대한 최신 연구를 소개했다.
달에는 물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은 중력이 약하고 한낮 온도가 섭씨 120도까지 올라가 물이 우주로 다 증발해 버렸다는 것이다. 아폴로 우주선도 달에서 물이나 얼음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6년 우주선 클레멘타인호가 달을 조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달의 남극에서 얼음의 징후가 발견된 것이다. 1998년 루나 프로스펙터호의 조사에 따르면 달에 있는 얼음은 1100만∼3억3000만t으로 추정된다. 이정도의 물은 달까지 가져가려면 무려 60조달러(약 7경원)가 넘게든다. 그러나 아직 달의 물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어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물의 존재 여부가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화성이다. 지금까지 여러 화성 탐사선들은 큰 강이 흘러간 흔적, 호수 흔적, 샘이 솟아난 흔적, 심지어 최근에 물이 흘러간 것으로 보이는 흔적까지 찾아냈다. 화성의 운석에서는 바다에 녹아 있던 소금도 발견됐다. 많은 우주 생물학자들은 화성의 얼음이나 지하수 속에 지금도 박테리아가 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미국 제트추진연구소(JPL) 에드워드 스톤 소장은 “화성의 극지에는 그린란드 만한 얼음층이 있으며 과거에 이보다 10배나 많은 물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05년부터 화성의 흙을 지구로 가져와 물의 존재를 조사할 탐사선을 잇따라 발사한 뒤 10∼20년 안에 화성에 지하수 구멍을 뚫을 계획이다.
화성과 함께 목성의 위성들도 요즘 물 때문에 각광받고 있다.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호의 조사에 따르면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는 150㎞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 있으며, 얼음층 밑에 물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NASA는 2008년 유로파에 탐사선을 발사해 물을 찾아 나선다.
또 98년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서도 수증기의 유력한 증거가 발견됐다. 이 수증기의 실재 여부는 2004년 7월 토성에 다가갈 탐사선 카시니호가 확인할 예정이다. 오리온 성운 등 태양계 바깥에서도 물과 수증기의 증거가 발견됐다.
그렇다면 우주의 물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물은 수소와 산소로 만들어져 있다. 수소는 빅뱅 때 만들어져 우주에 풍부하게 널려 있다. 산소는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별이 폭발하면서 바깥으로 뛰쳐나간 산소가 수소와 만나 물이 됐다.
김충섭 교수는 “물과 수증기의 존재는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을 높여 주며, 인류가 달이나 화성에 사는 날이 온다면 매우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화성의 물 흔적. 진흙땅에 물이 흐르면서 물결 무늬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 무늬는 35억∼43억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왼쪽) 지구에서 500광년 떨어진 적색거성 ’CW 레오니스’ 주위에서 발견된 물과 얼음의 띠를 그린 상상도. -사진제공 미 항공우주국·유럽우주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