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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이종욱 WHO 사무총장 당선자

입력 | 2003-02-13 17:50:00

이 당선자는 책 읽는 시간을 빼앗길까봐 골프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운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더블유에이치오가 뭐하는 뎁니까?”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의 이종욱 사무총장 당선자의 예방(禮訪)을 받고 이렇게 물었다. 이 당선자가 사무총장 선거에서 이기던 날 국내 언론은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국제기구의 수장이 나왔다며 대서특필했다. 최근 한국에 잠깐 다니러 왔을 때는 보건 의료와는 무관한 정치인들까지 그와 손 한번 잡아보려고 줄을 섰다. 하지만 WHO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노 당선자가 오히려 솔직했다.

WHO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일을 하는 곳이다. 소아마비 환자가 사라진 것이나 결핵 환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WHO의 질병 퇴치 사업 덕분이다. 다이옥신의 1일 섭취 허용치 등 각종 기준치를 정하는 것도 WHO이며 비만이 질병으로 분류된 것도 WHO의 유권 해석에서 비롯됐다.

이 당선자는 해방둥이(58세)로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그 연배에 이만한 학연이라면 국내에서 편안한 삶은 보장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쉬운 길을 놔두고 밖으로 눈을 돌렸다. 지금보다 국제 기구에 대한 인식이 더 깜깜했을 시절이다.

● WHO 사무총장의 CEO 론

이 당선자는 20년간 WHO에서 일하면서 나병과 소아마비 퇴치 사업을 주도했다. 특히 90년대 후반 백신국장 재직시 소아마비 유병률을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려 박멸에 가까운 성과를 올렸다. 2000년 12월 결핵국장으로 옮겨와서는 북한에 6만명분의 결핵약을 공급하는 등 19개 국가의 결핵 퇴치 사업을 벌였다.

WHO의 사무총장이 되면 직원 5000명에 연간 22억달러의 예산을 쓰는 유엔 최대 최고(最古) 전문 조직의 CEO로 역할이 바뀐다. 밖으로는 국가 원수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으며 인류의 건강과 관련된 현안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교적 인물로 활동하게 된다.

그의 최근 관심사는 에이즈이다. 이라크 전쟁이 임박했으니 난민들의 보건문제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천연두 박멸 후 미국과 러시아에 연구용으로 맡겨둔 천연두 세균이 생화학 무기로 활용될 가능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만의 WHO 옵서버 자격 참여를 둘러싼 대만과 중국간 신경전에서는 정치력을 시험받게 된다.

국제기구도 결국 돈으로 굴러가는 조직이다. 사업가들이 투자자를 찾듯 WHO는 기금을 모은다. WHO의 연간 예산 22억달러 가운데 10억달러가 정규 예산이고 나머지는 기금이다. 기금의 공여자는 각국 정부나 시민단체 기업 재단 등이다. 그는 기금 모금에도 수완을 발휘해 백신국장 재직시절 백신 연구기금을 1500만달러에서 7000만달러로 늘려놓았다. 이 중에는 테니스 선수 마르티나 힝기스로부터 받은 7만5000달러도 포함돼 있다.

“돈을 쫓아가면 절대 돈이 안 들어온다. 세상에는 돈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색을 내가며 돈을 쓸 수 있는 좋은 사업 계획을 세우면 돈은 절로 들어온다.”

이 당선자는 직원들에게 사업 계획을 맡긴 뒤에는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직한 실수라면 거듭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기금 모으기는 유전을 파는 일과 같아서 99번 실패하더라도 마지막 100번째 유전에서 기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밥이 다 될 때까지는 뚜껑을 자주 열어보면 안 된다.”

● 난 로맨티스트

그가 WHO 사무총장에 당선되자 국내외 언론들은 “의사로서 전문성과 함께 평생을 의료의 사각지대에서 봉사하며 보여준 투철한 인류애가 당선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경기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나병 환자를 돌보는 봉사 활동을 했다. 그리고 94년 WHO 제네바 본부로 옮기기 전까지 10년동안 남태평양과 서태평양의 오지에서 진료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나환자 고름 닦던 의대생’ ‘가난한 자를 돕는 박애주의자’라는 수사에 “내가 마조히스트인줄 아느냐”고 반문한다.

“희생과 봉사 정신만 있었다면 1년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남들은 힘들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그 일이 무척 즐거웠다.”

이 당선자가 나병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병이 대체 어떤 병이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하고 무서워하는지 알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미국 하와이대에서 나병 전문의 자격을 딴 뒤에는 세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대학에 남는 것, 또 하나는 미국 의사 면허로 돈버는 것, 또 하나는 WHO에 취직해 오지를 돌며 사서 고생하는 것.

연구실에 앉아 있는 체질은 아니었다. 한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일류 의사가 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1983년 피지섬에 있는 WHO 남태평양 사무처에서는 나병 전문가를 찾고 있었고 이 당선자는 이 길을 택했다.

그는 책에서나 보아온 타이티 누벨칼레도니 솔로몬군도 등 남태평양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녔다. 덥고 물 것 많은 섬생활은 고단했다. 환자가 제 발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 나병퇴치 팀장을 맡고 있던 그는 현지 사정에 밝은 원주민들과 탐험대를 조직해 이 섬 저 섬 나병 환자를 찾아 다니며 약을 공급했다.

섬 한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차로 달려야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좁은 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섬 열병(rock fever)’에 걸리기 쉽다. 이를 극복하려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마약을 했다. 미국인 간호사가 영국 대사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는 일도 있을 정도로 제 정신으로는 살기 힘든 곳이었다.

그래도 그는 재미가 있었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남태평양 이야기’에 나오는 섬들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책과 실상을 비교해 보는 일도 즐거웠고, 원시림에서 고생고생하다 호텔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는 차가운 음료수 맛도 좋았다. 어디를 가든 의사는 꼭 필요한 존재로 대접 받았다. 예쁜 원주민 아가씨들은 그에게 소박한 밥상을 내밀었다.

“수지맞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낭만적이지 않은가.”

● 셰익스피어가 특효약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WHO 사무총장 후보의 자격조건 중 하나가 후보자 자신의 건강이다. 이 당선자는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한다. 섬에 살 때는 해양 스포츠를 즐겼다. 제네바에서는 프랑스 샤모니의 몽블랑에 올라 스키를 탄다. 동네 산에 오르고 레만호의 산책 코스도 자주 찾는다.

아침은 거른다. 점심은 작은 샌드위치 조각으로 때울 때가 많다. 하루 세끼 중 제대로 챙겨먹는 것은 저녁 정도다. 담배는 피우지 않고 술은 와인을 즐겨 마신다. 이 당선자는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며 65㎏의 몸무게를 60㎏으로 줄이기 위해 식사량을 더 줄여볼 계획이다.

스트레스는 독서로 해소한다. 최근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오디오 테이프로 들으며 책과 비교해 읽는 취미가 붙었다. 그는 고교시절 원서로 토머스 하디의 작품을 읽었다. 카뮈의 ‘페스트’를 프랑스어로 읽으면 어떨까 궁금해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을 원어로 읽고 싶어 일본어를 독학했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한 어학 공부가 국제 기구에 근무하면서 큰 힘이 됐다. 사무총장 선거 운동차 들른 영국에서는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예전에는 자신이 섬기던 왕을 죽이고 왕이 되는 맥베스를 즐겨 읽었는데 요즘엔 햄릿을 읽는다. 선거에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줄줄 외워대는 그를 ‘무식한 동양놈’이라고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어로 고전 읽기가 코쟁이들과의 기 싸움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고전에는 현대인들이 고민하는 문제의 해답이 있다.

5년전 노르웨이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를 지낸 그로 할렘 브룬틀란 총장이 취임하자 그는 여성 상관을 보필하기 위해 14세기 영국 작가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초서는 책에서 이 당선자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여자란 매사에 컨트롤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이제 조직의 보스가 됐으니 성공하는 CEO가 되는 법이나 리더십에 관한 책을 읽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게 건조한 책을 읽어서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경영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고전을 읽어야 한다.”

그는 자기 소유의 집이 없다. 제네바 인근에서 아내 레이코 여사와 월세 아파트에 산다. WHO 국장의 연봉은 세금 떼고 12만달러(약 1억5000만원)이며 자녀 1명당 연간 1만4000달러의 교육비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 나온다. 코넬대 전기공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아들 충호씨(26)의 학비(연간 5만달러)를 대느라 집을 사지 못했다고 했다.

조직에서도 그렇듯 그는 집에서도 가장으로서 권위를 세우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나자로 마을에서 봉사하며 만난 레이코 여사는 결혼 후에도 일본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에는 바쁜 남편의 내조에만 매달리지 않고 일년의 절반은 페루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그곳의 극빈촌 사람들을 도와 미국 수출용 수공예품을 만든다.

아들 충호씨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정서는 미국인에 가깝다. 이 당선자 내외는 파란 눈의 며느리를 맞을 각오도 돼 있다. 미국 대학으로 유학 갈 때도 “마약하지 말고 콘돔을 꼭 써라”고 당부했을 뿐이다.

이 당선자는 제네바로 떠나면서 “다음에 한국에 오면 ‘무진’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그려진 안개를 보고 싶기 때문이란다. 이 당선자는 올 7월 임기 5년의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