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에 상주 중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전부를 추방키로 한 북한의 27일 결정은 놀랍기는 하나 예정된 수순이다. 북한의 전매특허인 갈 데까지 가보자는 ‘벼랑끝 전략’을 구사, 선(先) 핵포기를 조건으로 대화를 거부하는 미국을 협상테이블에 강제로 끌어 앉히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12일 전격적으로 핵동결 해제를 선언한 이후 5㎿ 원자로 봉인 제거 및 감시카메라 작동불능→방사화학실험실 봉인 제거→핵연료공장 봉인 제거→핵연료봉 장전 등 후속조치를 하나씩 실천에 옮겨왔다. 사찰단 추방을 결정한 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좀 더 빨랐을 뿐이다.
하지만 IAEA 사찰단 추방이라는 결정적 조치를 취한 이면에는 몇 가지 ‘모험적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기준으로 볼 때 IAEA 사찰단 추방은 넘어서는 안될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북한 지도부는 바로 이 점을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한미일 3국이 ‘평화적 해결’을 거듭 다짐하고 있지만, 특히 부시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갖고 있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레드 라인’을 건드림으로써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일 3국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북한은 보다 강도 높은 시도를 다시 감행하게 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또 북한은 남한의 대통령당선자와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 조율을 시작하기 직전인 지금이 모험을 감행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내년 1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방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과 북핵문제를 협의한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석렬(柳錫烈)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 내에서조차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여론이 생겨나고 있고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에서도 비외교적 수단이 아닌 평화적 해결을 원하고 있는 분위기를 북한이 읽고 있다”며 “바로 이런 때야말로 미국의 ‘속내’를 떠보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차제에 노 대통령당선자의 대북자세도 가늠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노 당선자는 27일 당선 후 첫 대북 성명에서 “한국민의 우려가 고조되면 한국 정부와 새 정부 책임자의 역할도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었다.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북한으로서는 노 당선자의 진의를 파악해보려는 부수적 효과도 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