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盧후보가 걸어온 길]위기마다 승부사 기질

입력 | 2002-11-27 18:31:00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정치역정은 3김정치, 즉 지역분열 정치에 대한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원외정치인에 불과했던 그가 ‘노풍(盧風)’을 타고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부상한 데에는 정치입문 이후 14년간 일관되게 추구해온 이런 정치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제의로 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그는 그 해 5공 비리 청문회에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으나, 90년 3당합당을 거부하고 스스로 시련의 길을 선택했다. 탄탄대로가 보장된 거대 여당에 합류하는 대신 주저없이 YS와 결별한 것이다.

이후 야권통합에 나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통합민주당을 함께 했지만, 95년 DJ가 4번째 대권 도전을 위해 통합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야권분열’이라며 역시 합류를 거부했다.

그러나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그는 수평적 정권교체와 동서통합을 명분으로 DJ와 다시 손을 잡았고, DJ와의 재결합은 그에게 재기의 활로가 된다.

2000년 4월 16대 총선. 그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면서도 92년 총선과 95년 시장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안겨준 부산 출마를 감행한다. ‘적지(敵地)’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대권의 꿈을 품고 있었던 그에게는 피할 수 없는 ‘도박’이었다.

그는 또다시 낙선했다. 하지만 그의 ‘도박’은 대권 도전의 싹을 틔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세 번째 낙선을 계기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라는 자발적 팬클럽이 태동했고, 이는 ‘정치지도자 노무현’으로 자리매김하는 발판이 됐다.

그의 개혁노선은 상당부분 DJ의 것과 맥을 같이하지만, 승부사적 기질은 YS를 빼닮았다는평가도 받는다.

4월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뒤 6·13지방선거 패배에 이은 당내 분란으로 ‘중도낙마’의 위기에 처했지만, 그는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와의 단일화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불리하던 상황은 일거에 반전됐다. 이제 그의 정치실험은 마지막 기로에 서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