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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생일조차 오락가락하는 '나운규 연구'

입력 | 2002-11-25 18:30:00

춘사 나운규


‘26일이 춘사 나운규(1902∼1937)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 맞나, 틀리나?

영화계에서 아직 이런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영화의 개척자’인 나운규에 대한 국내 연구는 여전히 ‘수박 겉 핥기’ 수준이다.

나운규의 생일과 관련한 유일한 공식 문서는 그가 1921년 수감됐던 청진형무소의 기록으로 1902년 10월 27일이다. 당시 음력을 사용했던 관행을 감안해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같은 해 11월 26일이 된다.

그러나 최근 아리랑 관련 연구단체인 ‘아리랑연합회’는 ‘22일이 나운규의 탄생 100주년’이라며 기념 자료전 초청장을 발송했다가 뒤늦게 이를 26일로 수정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이는 춘사의 친우였던 윤봉춘 감독이 1935년 11월 22일자(양력) 일기에 ‘오늘이 나군(나운규) 생일’이라고 적혀 있다는 조희문 상명대 교수의 주장을 당시 음력을 사용한 관행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

이처럼 생일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25일 영화감독협회와 영화평론가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기념 심포지엄에서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음력과 양력을 불문하고 유일한 공식기록에 기재된 10월 27일을 가장 정확한 공적인 생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포지엄에서는 또 ‘아리랑’이 항일민족영화인가, 아니면 대중적 오락영화인가, 나운규를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나 등의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조희문 교수는 “60년대 이후 남북한은 나운규에 대한 찬양으로 일관했으나 그의 영화사적 위상은 투사라기보다 초기 영화계에 처음 등장한 대중적 ‘스타’의 역할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아리랑’뿐만 아니라 나운규가 출연, 감독한 영화가 한 편도 남아있지 않아 모든 주장이 2차 자료에 의거한 추정의 수준을 넘기 어렵다는 점. 한국 근대 초기 영화 필름은 대개 밀짚모자의 ‘테두리 장식’으로 사라졌거나 일본 등의 개인 소장가에게 넘어가 실체 확인이 불가능하다. 믿을 만한 2차 자료도 남북한에 흩어져 있어 남북한 공동연구와 자료교환 없이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 해석을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