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경제 포커스]삼성이 세계 일류된 비결은…

입력 | 2002-11-25 18:14:00


D램, S램, 휴대전화,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 삼성이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를 차지하는 세계 일류 제품들이다. 삼성은 현재 전자 완제품과 부품 등 20가지에 이르는 세계 일류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 내부에는 아직도 위기감이 팽배하다. 삼성 고위 임원들은 “어느 날 다른 기업에서 실리콘이 필요 없는 반도체를 개발한다면 삼성의 D램 사업은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삼성은 실리콘 대신 다른 물질을 사용하는 F램, M램 등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도 열중하고 있다.

차세대 영상 압축기술인 MPEG4 세계 표준의 11% 점유, 디지털용 컬러 원천기술 개발,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FED…. 일류를 향한 삼성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애니콜 신화’나 ‘TFT-LCD 세계 1위’는 한두 명의 천재 과학자가 이룬 업적이 아니다. 연구 개발과정을 합리화 과학화한 삼성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연구개발도 이노베이션〓삼성 그룹의 기술책임자(CTO)인 종합기술원 손욱 원장은 ‘시장과 동떨어진 기술은 기업기술이 아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초 과학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말이 아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는 다르며,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기술은 기업에 의미가 없다는 얘기.

삼성의 기술자들은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로드맵(Road map)을 생활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마케팅 담당자와 종합기술원의 연구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 시장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시장 로드맵), 제품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제품 로드맵),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기술 로드맵)를 수시로 만나 논의한다. 보통 6개월에 한번씩 만나 로드맵을 점검하며 사업부 담당자와 연구원이 한시적 개발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최근 시장과 상품의 변화가 빨라짐에 따라 연구 개발과 제품 마케팅이 동시에 이뤄지는 ‘R&BD(Research and Business Development)’가 이뤄지고 있다. 기초 기술을 연구한 다음에 제품화에 들어가서는 변화하는 시장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종합기술원은 97년 이전에는 개발한 기술의 20%만 돈으로 연결됐지만 지금은 시장과 기술을 일체화해 상품화율을 80% 가까이 올렸다. 또 연구개발 과정을 혁신함으로써 32개월 걸리던 개발 납기일을 24개월로 단축했다.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라〓그룹 회장이나 최고경영자의 관심은 기술 발전의 중요한 동인이 된다.

얼마 전 삼성SDI 김순택 사장은 회장실에서 팩스 한 장을 받았다. 일본의 어느 학술지에 난 논문으로, 2차 전지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물질이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이 논문을 보고 김 사장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는 것. 김 사장은 2차 전지를 삼성SDI의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기술에 대한 이 회장의 관심은 유별나다. 대표적인 것이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라’는 광고로 잘 알려진 명품+1 TV. 이 회장이 1995년 “지금 TV는 방송국이 송출한 화면의 80%만을 보여준다”며 개선하라고 지시한 후 좌우화면을 8㎜씩 더 보여주기 위해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코닝이 공동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결국 1년 만에 유리 및 브라운관, 부품 등을 완전히 새로 개발했다. 모두 170억원을 들여 개발한 이 TV는 97년 한 해 동안만 국내에서 1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장은 또 최근 홈시어터를 주요 사업으로 키우라고 당부하면서 “삼성의 홈시어터는 중저음이 약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기술은 사람이다〓삼성은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우수 기술자에 대한 욕심도 남다르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평소 “사람은 기술이고 기술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삼성전자는 1998년 박사가 800여명이었으나 지금은 1300여명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연구자도 휴먼네트워크가 중요한 시대. 삼성은 연구자 개개인에게 세계의 우수한 연구자들과 제휴하도록 권하고 있다. 종합기술원은 연구원 1인당 10명씩, 세계 모두 7500명의 우수 연구자가 연계되어 필요한 기술이나 정보를 주고받는다. 연구원 자체로도 세계 여러 연구실과 조인트랩(joint-lab)을 만들고 있다.

손 원장은 “모든 기술이 다 기업에 쓸모 있는 것은 아니다. 선진기업과 정면대결을 벌이는 지금은 세계 최초 또는 최고(the First or Best)의 원천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 시장을 지배하는 기술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