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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건설업체 "돈 될 사업만 골라 합니다"

입력 | 2002-11-19 18:08:00



《장면1:1998년 12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외인아파트 재건축 수주전이 한창이었다. 공사비는 2000억원. 누가 봐도 탐이 나는 입지여건이었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업장이오. 무조건 수주하시오.”(민수기 당시 LG건설 사장) 이 한마디에 LG건설은 다소 무리다 싶은 조건으로 공사를 땄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지금 그 자리엔 동부이촌동 최고급 아파트로 통하는 ‘한강LG빌리지’가 건설되고 있다.

장면2:2002년 10월 경기 안산시 A아파트 재건축 현장. 500억원짜리 사업장이다. 수주는 쉽지만 수익성이 조금 불투명했다. 용적률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LG건설은 서류심사 한 번으로 수주를 포기했다.》

건설회사들의 사업방식이 변하고 있다. 과거처럼 ‘묻지마 수주’는 없다. 주택부문은 더욱 그렇다. 철저하게 수익성을 따진다. 그 덕분에 재무구조가 좋아졌다.

하지만 장기적인 사업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안팎의 염려가 많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지적이다.

▽확 좋아진 재무구조〓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6월 말 건설업 부채비율은 280.2%로 작년 말(352.5%)보다 72.3%포인트 떨어졌다.

차입금 의존도도 줄었다. 작년 말에는 34.7%이었지만 올 6월 말에는 32.0%다.

대형 건설사일수록 재무구조가 좋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 LG건설, 대림산업의 부채비율은 155%(올해 9월 말 현재) 이하다. 선(先)투자가 많은 건설업 특성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수준이다.

수익성도 개선됐다.

장사를 얼마나 잘 했는지를 말해주는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올해 상반기 5.0%. 작년 상반기(2.4%)보다 2배 이상 뛰었다.

순이익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크게 늘었다. 대림산업은 올 들어 9월까지 946억원을 벌었다. 작년보다 408%나 늘었다. LG건설도 같은 기간 7.4% 늘어난 1149억원을 남겼다.

▽속병 앓는 사업구조〓겉으로 드러난 성적표는 일단 합격점이다. 하지만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우선 수주가 문제다. 건설업은 ‘수주산업’이다. 제조업처럼 물건을 찍어 내 파는 구조가 아니다. 당장 매출로 연결되지 않아도 먹고 살 물량을 미리 확보해 둬야 한다.

삼성건설이 올 들어 9월 말까지 확보한 수주액은 2조8069억원. 지난해보다 1110억원이 줄었다. 특히 주택부문은 8269억원으로 작년의 60%에 그쳤다.

LG건설은 소폭 늘었다. 그러나 토목이나 플랜트처럼 경기를 타지 않는 분야의 수주가 크게 줄었다.

수주 총량이 줄거나 부문별 편차가 큰 이유는 재무구조를 고려한 때문. 조금이라도 ‘리스크’가 있는 사업에는 아예 손대지 않는 게 요즘 추세다. LG건설이 동부이촌동 아파트 시공권을 땄을 때와는 달리 ‘전략적 수주’라는 용어 자체가 안 통한다.

건설회사마다 화려한 재무제표를 받아 들고서도 정작 내년이 생사를 가름하는 해라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주량 감소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주택 공급량이 목표치를 밑돈다.

삼성건설은 올해 1만2000가구를 지을 예정이었지만 7400가구에 그칠 전망이다. 1만가구가 목표였던 LG건설은 6850가구, 1만2623가구를 지으려던 대림산업은 1만872가구에 만족해야 할 형편이다.

올해 주택시장이 사상 최고의 호경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내년 주택 공급량도 올해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성장이냐 안정이냐〓업계 관계자는 “건설업이 언제까지나 수주에 의존할 수만은 없다”며 “각자 특성에 맞는 상품에 특화하는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건설은 임대사업과 리모델링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수렵식’ 영업방식에서 ‘양식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업 특성상 이는 ‘희망’일 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준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수주가 줄면 건설업 자체의 생존이 불투명해진다”며 “특히 올해 재무구조가 좋아진 이유가 금리 하락과 부채 감소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규 수주는 필수”라고 말했다. 재무구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장기적인 생존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경고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