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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인사이드]史蹟지정 '풍납토성' 일대 7가구 겨울나기

입력 | 2002-11-11 18:27:00

주민 임형순씨가 서울 송파구 퐁납2동 291-1번지의 자신이 살았던 집터를 가리키고 있다. 발굴 후에 흙을 덮어 풍납토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 황금천기자


“날씨는 추워지는데 이삿짐 둘 곳이 없어 마당에 쌓아놓은 채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기도 하고, 자식을 친척집에 맡기고 지방에 내려가 돈을 버는 이산가족 부부도 있습니다. 빚은 자꾸만 늘어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보상대책 좀 마련해 주세요.”

서울 송파구 풍납2동 291, 298번지 일대 7필지 560평의 소유주 7세대 주민들은 요즘 하루 하루가 힘겹다. 올 3월 새 집 마련의 꿈에 부풀어 기존 주택을 헐고 신축 공사를 하던 도중예기치 않은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1925년 대홍수 때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풍납토성 서쪽 벽이 확인됐고 문화재청은 보존가치가 높다는 판단에 따라 이 곳을 사적으로 지정했다. 사적으로 지정되면 건축행위가 금지된다. 이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지만 서울시와 정부로부터 아직 보상을 받지 못해 이주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서울시가 잠정적으로 책정한 보상비는 60억원. 사적으로 지정된 지역의 주민에 대한 보상은 국비 70%, 시비 30%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울시는 내년 문화재청 예산에 국비가 책정되지 않아 당장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다리다 지친 주민들은 최근 서울시를 찾아 “시비로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국비로 충당하거나 현재 풍납토성 내 다른 지역의 토지 매입 예산 잔액에서 보상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2003년 문화재청 예비비를 보상비로 활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보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주민 유종호(柳鍾浩·38)씨는 “이 곳에서 세를 살다가 4000만원을 대출 받아 결혼 10년 만에 가까스로 집을 장만해 다가구 주택을 지으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씨는 3월 인근 10평 짜리 창고를 임대(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해 네 식구와 함께 살다가 7월 3500만원을 대출 받아 8평 짜리 단칸방으로 옮겼다. 대출 이자와 월세 부담으로 초등학생 두 딸은 다니던 학원도 그만 뒀다.

수년 전부터 풍납토성 유적이 발굴되고 건축이 제한되면서 문화재 보존과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풍납동 일대.

주민들은 “중요한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우리도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특단의 조치를 바라고 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