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전쟁과 독재, 그리고 그에 대한 투쟁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돌이켜 볼 때 정치의 혼란은 그 원인이기도 했고 또 결과이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 정치가 많이 발전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인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적어도 독재는 물러갔고 정치인들이 국민의 의사를 받들어 모시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로 민주화가 광범위하게 뿌리내렸다.
비록 한국정치가 구태를 완전히 벗었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을 무시하고 억압하던 시절에 비하면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후보 둘러싼 추문 난무▼
그러나 요즈음의 정치상황을 살펴보자. 어떻게 국민이 정치를 믿고 정치인들을 신뢰하며 생업에만 신경 쓸 수 있겠는가.
정치인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되고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공격하고 견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제도 아래에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이전투구로 인해 국민은 여야 모두에 실망감을 넘어 불안감까지 느끼고 있다.
묘하게도 현재 여당과 야당의 대통령후보는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그 때문인지 “인치가 아닌 법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법이 바로 서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은 이들이 집권한다 해도 법치가 제대로 되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당사자들의, 혹은 주변인물들의 각종 비리나 탈법 불법행위 등에 관한-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정치와 법의 관계를 생각하는 기본방식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법치는 법에 의한 통치, 법에 구속되는 정치를 요구한다. 단순히 법의 형식만 빌려서 통치하는 것은 법치가 아니다.
그런 것은 전제적 왕권 하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고 헌법이 요구하는 민주적 법치국가는 법의 이념에 따라 국가질서가 형성되는 것이다. 내용이 정의로운 법, 안정성을 가진 법, 합리적인 법을 통해 국가질서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법의 예측가능성은 정의와 더불어 법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된다. 모든 국민이 법을 지키고 그 법에 복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정당해 국민이 법에 대한 복종을 수긍할 수 있어야 할 것이지만 아무리 정당한 법이라도 국민이 그러한 법이 있다는 것과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면 법을 지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법치의 출발은 당연히 민주적 입법과정이다.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서 국회가 법을 만들고 그런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 시행되는 과정이 투명하게 모든 국민에게 공개될 때 법의 예측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법과 정치의 관계는 참으로 이중적이다. 법은 헌법을 필두로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을 통해 정치를 규율하지만 아울러 그러한 법들은 정치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정치적 혼란상황, 특히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의 혼란 속에서 국민은 법에 대해, 그리고 그 법과 얽혀 있는 정치에 대해 어떠한 예측가능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국민이 이해하는 기준 제시를▼
국민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거리감과 거부감을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이 생각하고 있는,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을 벗어나서 정치판이 움직이고 있다는 데 있다. 각각의 정치적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정말로 민주화의 과정을 통해 발전되었고 앞으로 더욱 발전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민주적 법치국가를 구성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룰에 따라 움직이는 예측 가능한 정치가 되어야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예측하지 못하는 수단이라도 동원하겠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에 의해 펼쳐지는 예측 가능한 정치, 그것이 정치인들 스스로가 주장하는 법치의 출발점인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