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짐 수색 - 박경모기자
순종식씨(70) 가족 등 21명의 ‘북한판 보트피플’을 바다를 이용한 대량 탈북사태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을까.
정부관계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월남 패망직후의 ‘보트피플’과 연관짓는 것은 확대해석이라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순씨 가족은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기보다는 그저 ‘보트에 탄 사람(People on the boat)’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 내부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다양한 해상탈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역시 가상시나리오에 불과하다. 북한의 통제시스템은 아직은 큰 변화가 없다.
해상탈출 사례는 87년 김만철씨 가족, 97년 안선국씨 일가족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보트피플 도미노’를 예측할 만한 특별한 공통점이 없다. 중국을 통한 탈북도 마찬가지이지만 해상탈출에도 그만큼 난관이 많기 때문이다.
바닷길을 잘 알아야
▽바닷길을 알아야 한다〓순씨 가족의 남한행 성공에는 뱃사람인 큰아들 용범씨(46)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북한 해상경계망을 뚫고 남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바닷길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 선장인 용범씨는 “평생 바다에서 살아 항해만큼은 자신 있다. 공해를 멀리 돌아가면 남쪽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말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함께 탈북한 이경성씨(33)는 기관장. 선장과 기관장의 만남은 항해의 기본이자 필수조건이다.
해상탈출의 효시인 김만철씨도 직업이 의사였지만 항상 배를 타고 다니면서 선원들을 돌봤기 때문에 바닷길에 일가견이 있었다. 97년에 귀순한 안선국씨와 김원형씨도 32t 고기잡이배의 선장과 기관장으로서 친분이 두터웠다.
해상경계가 느슨해야
▽북한 해상경계태세가 붕괴돼야 한다〓북한 해상경계 시스템에 빈틈이 생겼는지를 이번 사건만으로 단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고기잡이 배 사이에 섞여있을 경우 단속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최근 정황은 붕괴 조짐보다 오히려 안정화쪽으로 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최근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하는 등 오히려 통제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순씨 가족의 남한행은 일시적인 경계태세의 이완을 노린 ‘틈새공격’이 성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내란 상태에 빠지거나 격변기에 따른 감시체제의 붕괴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대규모 해상탈출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한과의 '끈'이 있어야
▽남한 친척과의 끈도 필요하다〓4남1녀 중 맏이인 순씨의 동생은 모두 남쪽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 탈북한 종식씨와 용범씨는 재작년 중국에서 넷째 봉식씨(55)를 만난 뒤 지속적으로 편지를 교환했다. 탈북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얻은 것은 물론이다.
97년 사례도 유사하다. 김원형씨의 경우 재미교포 동생과 서울에 살고 있는 사촌형을 통해 배를 구입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얻었고 사전에 중국에서 만나 구체적인 탈출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이 탈출하려고 해도 북한 당국의 통제와 정보 및 탈출자금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남한을 비롯한 외부 친척의 도움은 절실하다.
기름등 충분히 준비해야
▽기름도 나무도 없다〓여러 조건이 갖춰져도 장시간 항해에 필요한 기름을 충분히 확
보해야 한다. 또 뗏목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망망대해를 항해하기에 불충분하고 북한의 마구잡이 벌목으로 인해 통나무를 구하기도 어려워 거의 불가능하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