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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섬세한 심리묘사 ‘언페이스풀’

입력 | 2002-08-15 17:35:00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영화 ‘언페이스풀’의 타이틀 소개는 상징적이다. ‘Faithful’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고 여기에 ‘Un’이라는 접두사가 붙어 ‘Unfaithful’로 바뀌면서 시작된다. 마치 ‘정숙하던’(Faithful) 중산층 주부가 어느 한 순간 ‘부정한’(Unfaithful) 아내가 되는 영화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 처럼.

‘언페이스풀’은 30세가 넘은, 그리고 가정을 가진 관객을 겨냥한 영화다. 30,40대 관객들이라면 한 편쯤은 봤음직한 라인 감독의 이전 히트작인 ‘나인 앤 하프 위크’(1986년), ‘위험한 정사’(1987년), ‘은밀한 유혹’(1993년)의 ‘성분’이 조금씩 뒤섞여 녹아있다. 일탈적인 섹스, 불륜, 욕망,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흔들리는 가정….

뉴욕 교외에서 여유있게 사는 주부 코니(다이앤 레인)에게는 자상한 남편과 여덟 살 짜리 아들이 있다. 어느 날 코니는 뉴욕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폴(올리비에 마르티네즈)을 알게 되고 그의 매력(결국은 그와의 섹스)에 빠져든다.

코니의 남편 에드(리처드 기어)는 아내의 외도를 알게되지만 11년간 꾸려온 단란한 가정을 지키려고 한다. 에드는 폴을 찾아갔다가 사고로 그를 죽이게 되고 가정은 위기에 처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코니와 폴이 서로에게 탐닉하는 과정에 치중하면서 농도 짙은 멜로로 펼쳐지다가 중반 이후 폴이 죽으면서 스릴러로 방향을 튼다. 그러나 라인감독은 흔한 치정극 스릴러로 끌고 나가는 대신, 코니와 에드 부부의 심리에 다시 초점을 맞춘다.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새 속옷을 장만한다, 욕망의 순간을 혼자 떠올리며 요리를 태운다, 남편이 일하고 있는 방의 불을 무심결에 끄고 나간다…. 일상 속에서 미묘한 심리변화를 읽어내는 것이다. 안온한 삶 속에 감춰져 있던 성적 판타지나 욕망을 섬세하게 묘사해온 라인 감독의 작품 답다.

영화는 왜 아무런 불만이 없어 보이는 주부가 외간 남자에게 빠져들게 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내를 대할 때와 회사 직원을 대할 때 달라지는 에드의 태도라든가 남편과의 섹스와 애인과의 섹스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어림짐작케 할 뿐이다.

이 영화는 스타일이나 메시지의 측면에서 라인 감독 전작들의 이름에는 못 미친다. 남편의 동료가 코니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설정 등 몇몇 상투적인 장면도 눈에 띈다.

여성의 심리 묘사가 섬세하지만, 넘쳐나는 TV ‘불륜드라마’에 익숙한 여성보다는 어쩌면 에드의 시각에서 영화를 볼 남성관객들이 생각할 여지가 더 많은 영화다. 18세 이상. 22일 개봉.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