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위크엔드 포커스]벤츠가 그들을 태운 까닭은…

입력 | 2002-08-15 17:14:00

벤츠의 핵심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는 김도영씨와 이정란씨, ‘가까운 미래의 리더’를 꿈꾸고 있다.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신입사원이 해외법인 사장들과 한 테이블에서 회의를 한다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외국인 동료들과 핵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돈 주고도 하기 힘든 경험을 돈 받고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아시아 핵심인력 양성프로그램인 AMAP(Asian Management Associate Program). 신입사원이라도 이 과정을 거치면 윗사람들도 ‘미래의 리더’로 떠받든다. 이 과정은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신입사원을 선발해 바로 ‘실무’에 투입하며, 전담 멘터(조언자)가 내내 따라 다니며 경영자 수업을 돕는다.

한국벤츠(www.mercedes-benz.co.kr)에는 2000년 1기생 3명을 뽑은 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 10일 서울 코엑스 오라토리엄홀에서 열린 2기생 선발(6명) 설명회에는 1000여명의 취업준비생이 몰렸다. 각 대학 게시판과 인터넷 취업사이트에는 이 선발공고가 ‘강력추천’돼 있다.

김도영씨(27·재무기획 파트)와 이정란씨(27·마케팅)는 AMAP 막바지 트레이닝 중인 한국인 1기 연수생들. 2000년 6월 선발됐으며 개인에 따라 1년6개월∼2년의 연수과정을 밟고 있다. 김씨는 영어권 거주 경험 3년, 이씨는 1년 정도지만 합격은 영어실력으로 판가름난 게 아니었다. 회사측은 ‘패기있게 공격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한 것’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그간 벤츠의 홍콩 중국 독일법인과 슈투트가르트의 본사를 드나들며 ‘매니저 보좌’로 일했다. 그는 최고경영자들을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반복하며 그들이 원하는 수준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 1’이 열렸을 때 벤츠 해외법인 사장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열었어요. 흔치 않은 자리였죠. 앞으로 어느 나라에 지사를 설립하는 것이 좋을지 등에 대해 설명했는데, 사장단은 비행기 안에서 간략한 보고서만 읽은 수준인데도 날카로운 질문을 날렸습니다. 압축해서 핵심만 단문으로 물었고, 답변이 조금만 늘어져도 ‘next(다음은)?’라며 재촉하더군요.”

김씨는 이런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간결한 본론’이 정답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평소에도 주로 독일 현지 매니저, 아시아 영업본부장 등과 자리를 함께해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독일 중국 미국 인도 일본 브라질 출신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게 예사이며 영어가 공식 언어다. 연세대 경영학과(94학번) 출신인 김씨는 재학 중 베이징의 대외경제무역대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적이 있어 중국어도 잘한다.

회사는 AMAP 연수생들의 인맥을 정책적으로 관리한다. 김씨는 “그 덕분에 연수 중 만난 해외법인의 동료와 상사들이 현지의 중요 정책에 관해 공표 전에 e메일로 귀띔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스턴컨설팅, TN소프레스 등 컨설팅사, 여론조사기관 직원들과 팀을 이뤄 벤츠의 브랜드 이미지를 조사해 ‘한국에서는 좀 더 젊고 다이내믹한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정란씨는 홍콩과 독일에서 열린 판매 분야 중역들의 정책결정회의에 참여했고, 호주 시드니의 쇼룸에서는 자동차 세일즈 현장경험을 쌓았다. 회사는 지엽적인 마케팅 기술보다는 ‘세계시장’이라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있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때에는 벤츠 임원들과 함께 전세계 차종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1300㏄급 경차부터 최고급까지 벤츠의 경쟁상대인 세계의 주요 차종에 대한 브리핑을 아주 구체적으로 받았어요. 세계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죠.”

회사는 한국시장의 미래도 세계시장이라는 큰 틀에서 예측하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영업사원들과 함께 판매현장에서 소비자들의 요구를 파악하는 일도 익혔다. 이씨는 호주의 영업 현장에서 말을 잘하고 인맥이 두터운 사원보다는 ‘벤츠정신’으로 무장돼 있으며 남색 수트에 빨간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에 명찰을 반듯하게 달고 매일 벤츠의 이미지를 발산하는 영업사원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인상깊게 보았다.

연수생활에는 어려움이 많다. 사석에서는 중국어나 독일어 등 체류국가의 현지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생활용 제2외국어’를 익혀야 한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벤츠식의 ‘리더십’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각종 미팅에 참석하는 때가 더 많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상대를 설득해 결론을 도출하는 리더로서의 능력이 늘 강조됐다. 두 사람은 “항상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업무시간 내내 긴장해야 했다”고 말했다.

벤츠가 젊은 인재를 기르기 위해 IMAP(International Management Associate Program)를 시작한 것은 86년. 크라이슬러와의 합병 이후 그 중요도가 더욱 높아졌다. 회사 규모는 명실상부 글로벌해진 데 비해 국제 감각과 능력을 지닌 실무급의 중간관리자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벤츠는 IMAP를 통해 능력있는 신입사원을 중간간부로 조기 육성하는 정책에 힘을 실었다. 최근 더욱 중요해진 아시아지역에는 AMAP라는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 한국 중국 홍콩 등 아시아 10개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AMAP에 뽑힌 신입사원의 직위는 ‘대리급’. 그러나 다른 신입사원들 보다 상대적으로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 해외법인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집세와 용돈, 비행기삯을 넉넉히 받는다. 주5일 근무지만 금요일에는 오후 2, 3시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홍콩 근무 중 주말이면 중국 선전으로 자전거하이킹을 떠났고, 독일에서는 지원받은 벤츠 A클래스로 현지 동료들과 아우토반을 달려 무작정 인근 국가로 떠나기도 했다.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와 경영대학원을 나온 이씨는 독일 법인에 4개월 근무하는 동안 ‘아마데우스’라는 사내 동아리에 가입해 현지인들과 함께 주1회 음악활동을 했다.

AMAP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면 다시 사내 ‘리드(lead) 프로그램’을 이수할 기회를 갖는다. 리드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프랑스의 INSEAD, 스위스의 IMD 같은 유럽의 유명 경영대학원에 연수를 보내주는데, 중간관리자로 가는 고속도로 같은 역할을 한다. 리드 프로그램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마칠 경우 30대 중반에 벤츠 본사의 임원이 될 수도 있다. AMAP 지원자의 서류마감은 17일이며 2기생은 11월에 활동을 시작한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