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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칼럼]햇볕, 밀어붙이지 말라

입력 | 2002-07-10 18:36:00


6·29 서해교전을 계기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평화통일의 동반자라던 김정일 휘하의 북한 군부가 갑자기 우리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해 20여명의 사상자를 낸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서 우리 국민이 충격과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며, 이로 인해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인 햇볕정책에 관한 논란이 벌어지는 것 역시 불가피하다.

그러나 다른 문제의 토론들도 대개 그렇지만 이번 햇볕정책 공방 역시 이성적인 토의를 통해 북한의 사과를 받아낼 방책을 찾거나 다른 정책의 대안을 도출하기보다는 우리끼리 흑백논리에 빠져 내부적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

▼흑백논리 갈등증폭 안돼▼

햇볕정책의 올바른 토론을 위해서는 이 정책의 옹호자이건 반대자이건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대북 평화공존 정책은 이미 1970년대 초부터, 그리고 경제지원을 골자로 하는 대북 협력정책은 80년대부터 추진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현 정권 들어 ‘대북 포용정책’ 또는 ‘햇볕정책’으로도 불리는 대북 화해협력 정책은 박정희정권 중반기인 70년 8월 박 대통령의 ‘평화통일구상선언’과 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에서 비롯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들어서는 더욱 적극적인 대북 접근을 펴 84년에 남북경제회담 개최, 90년에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91년에는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성사시켰다. 김영삼 정권은 출범 즉시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 노인의 북송까지 단행하면서 열심히 대북 화해정책을 밀어붙여 김일성과의 정상회담에 합의했으나 그의 사망으로 불발에 그쳤다.

이 모두가 대북 접촉과 지원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꾀하려는 정책, 즉 햇볕정책이었다.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도 ‘맏형론’과 함께 이미 오래 전부터 쓰이던 표현이다. 95년 10월 김영삼 정권 당시 충남 부여에 무장공비가 나타난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은 DJ(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열심히 지지하는 모 신문은 이 때 사설을 통해 “부여에 출몰한 무장간첩은 (중략) 그 동안 ‘햇볕론’이니 ‘맏형론’이 하던 우리의 대북 인식이 얼마나 순진했던가에 대한 경각심을 던져 준 사건이기도 하다”고 썼다.

이 같은 사실들은 ‘햇볕정책’이 결코 DJ의 발명품도, 전매특허품도 아니라는 점과 이승만 정권을 제외한 역대 정권이 결코 ‘강풍정책’에만 매달리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DJ 햇볕정책의 원칙과 방법이지 햇볕정책 그 자체가 아니다.

DJ의 햇볕정책이 확고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이라는 목표 달성에 얼마나 충실했느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번 서해사건은 북방한계선의 무효화 내지 외교쟁점화를 노린 북한의 무력도발이었는지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김정일 정권이 우리측에 대해 기습적 무력 공격을 감행한 것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에게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온 DJ 햇볕정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정부와 그 지지세력들이 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DJ의 햇볕정책은 다른 모든 정책처럼 공적도 있고 과오도 있다. 인적 교류와 상호 이해증진이 최대의 업적이라면 현 단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초당적 대북 정책의 추진 대신 비판자들을 ‘반통일 세력’이라고 매도하면서 무리하게 밀어붙인 독선적 자세, 그리고 추진 방식에 있어서 유연성과 탄력성을 잃은 점이다. 그 결과 상황에 따라 강온 양면전술을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는 유연성을 잃어버렸다.

▼北 재발 방지 약속 받아내야▼

이것은 남북정상회담을 지나치게 서둔 DJ 햇볕정책의 경직성과 완고성에 기인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경제지원에 북한측은 총질로 보답했으며 서해교전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사업은 계속하면서도 막상 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들이 먹을 쌀의 제공은 보류하는 모순이 빚어졌다.

이번 서해교전사건은 북한 군부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선제공격인 것은 분명하지만 김정일 등 북한 최고지도부의 개입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 정부의 견해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든 김정일의 책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고, 또 앞으로 올바른 대북 정책을 펴려면 지금까지의 햇볕정책 추진 방식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