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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광고 ‘두뇌大戰’…“인재가 경쟁력 좌우”

입력 | 2002-06-27 18:31:00


한국 축구를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을 모델로 기용한 삼성카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광고 효과를 보고 있다. 카드업계나 다른 업계 회사들은 “운도 좋다”며 삼성카드를 부러워하지만 이 광고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제일기획은 피 말리는 작업을 벌여야 했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2월 치열한 경쟁 속에 히딩크 감독이라는 ‘히든카드’로 삼성카드의 광고대행권을 따냈지만 히딩크 감독을 모델로 섭외하는 일이 과제였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었고 대한축구협회는 히딩크 감독이 광고모델로 나서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제작팀은 우여곡절 끝에 알아낸 히딩크 감독의 e메일로 “광고모델이 되어줄 수 있느냐”는 편지를 보냈지만 1주일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마침내 히딩크 감독에게서 답장이 왔지만 “2주일 후에 한국으로 가니 그때 얘기해보자”는 말뿐이었다. 4월 초 제작기한을 맞추려면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일단 e메일로 협의하자고 히딩크 감독을 설득했고 이후 며칠 동안 e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광고업계가 6조원 규모의 광고시장을 둘러싸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광고주를 만족시킬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기도 하고 최고의 모델을 섭외하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경쟁업체의 동향을 알아내기 위해 치열한 정보전도 벌인다.

▽경쟁PT는 광고업계의 ‘전쟁터’〓광고주가 기획안을 심사해 새 대행사를 선정하는 경쟁 프리젠테이션(PT)은 어느 광고업체가 앞으로 먹고살 ‘양식’을 많이 챙기느냐가 결정되는 자리. 이 때문에 경쟁PT에 참여하는 광고업체들은 광고주 측 심사위원들의 성향이나 경쟁 대행사의 기획안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치열한 정보 싸움을 벌인다.

A광고회사는 지난해 말 30억원대의 경쟁PT를 앞두고 누가 심사위원장으로 나오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광고주 마케팅팀의 학맥 등 각종 인맥을 총동원했다. 경쟁PT 하루 전 50대 최고경영자가 심사위원장으로 나온다는 걸 알게 된 이 광고회사는 당초 국장급 한 사람에게 PT를 맡기려던 계획을 바꿔 심사위원장의 성향에 맞는 30대 여성을 함께 내보냈다.

B광고회사는 올 2월 모 식품업체의 경쟁PT 때 옆방에서 진행되던 경쟁 광고사의 PT 내용을 엿들어 성공한 케이스. ‘맛을 강조한다’는 컨셉트가 너무 비슷해 즉석에서 모델을 강조하는 쪽으로 프리젠테이션 방향을 바꿨다.

최근 모 스포츠음료의 경쟁PT 때의 일. 당시 경합을 벌이던 어느 두 광고회사는 기획안 제출을 앞두고 막판 편집작업을 공교롭게도 같은 건물 1, 2층에서 하고 있었다. 두 회사는 기획안 내용이 새 나가지 않도록 작업실 앞에 문지기를 세워놓는 등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50%의 높은 승률로 ‘PT 머신’이라는 별명을 얻은 금강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문호상 국장은 “PT가 열리면 선후배를 통해 상대 업체의 PT 책임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가장 먼저 알아본다”고 말했다.

▽최고의 모델을 잡아라〓성공적인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광고 컨셉트에 맞는 모델이나 감독을 섭외하는 일도 필수.

두산계열 광고대행사인 오리콤은 보보스(물질적 가치 외에 정신적 가치도 추구하는 상류층 전문가 집단)를 주제로 한 대우증권의 ‘플랜마스터’ 광고를 만들면서 치과의사 민병진 박사를 모델로 점찍었다.

그러나 오리콤은 민 박사가 비슷한 컨셉트로 광고를 내보내고 있던 대우증권의 경쟁사로부터 이미 모델 제의를 받았다는 걸 알았다. 제작팀은 콘티를 들고 쫓아가 일주일을 설득한 끝에 민 박사의 승낙을 받아냈다.

광고회사들은 실질적인 광고 제작을 외부 프로덕션에 외주를 준다. 이 때문에 실력 있는 감독을 누가 선점하느냐도 중요하다. 매스매스에이지의 박명천 감독, 유레카의 김규환 감독 등이 3주일 작업에 2000만원 정도를 받는 A급 감독들.

독립 광고대행사인 웰콤의 이연숙 PD는 “감독들마다 컬러가 달라서 비슷한 컨셉트로 광고를 준비하는 광고대행사들이 같은 감독을 섭외하는 경우도 많다”며 “감독을 섭외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창의력 있는 인재는 경쟁력의 핵심〓광고회사의 가장 큰 자산은 인력. 우수한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광고회사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그러다 보니 타사의 실력 있는 인재를 연봉이나 직급을 높여 스카우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바닥이 좁아 실력자들에 대한 ‘입소문’이 빠르고 다른 업종에 비해 인력이동도 잦은 편.

1967년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오리콤과 국내 1위 업체인 제일기획은 광고업계의 ‘인재 사관학교’로 불린다. 98년 12월 SK그룹 계열 태광멀티애드를 인수하면서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 TBWA코리아는 150여명의 인력 가운데 10%가 제일기획 출신.

제일기획 채용 담당 길기준 차장은 “3, 4년 전만 해도 신입사원을 많이 뽑았으나 최근에는 경력 위주로 채용 패턴이 바뀌었다”며 “제작 부서에서 장기적인 투자로 인력을 키우기보다는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