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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를 합시다]이상태/아파트 주차 악취…

입력 | 2002-04-29 18:25:00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조경이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멋들어진 나무와 그 아래 이런저런 풀꽃들이 잘 어우러져 한가로울 때 바라보고 있노라면 옛 고향의 뒷동산이 연상될 정도다. 나는 수묵으로 이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했고, 몇몇 이웃들은 잡초 뽑기와 휴지 줍기 등으로 화단에 대한 애정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나의 그 그림은 사실과 다른 ‘상상화’가 되고 말았다. 얼마 전부터 누군가 이 화단 가운데를 가로질러 통행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통로로 사용된 공간이 급기야 맨땅으로 변해버리며 길이 생겨버린 것이다. 화단을 질러가 봐야 아파트 출입구까지 1분도 채 절약되지 않는 데도 몇몇 사람이 바쁘다는 이유로 여러 주민들의 공동 재산인 화단을 훼손한 것이다.

훼손의 결과는 길이 생긴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사무소 측에서 화단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더구나 이를 타고 넘지 못하도록 철조망까지 설치해 놓은 것이다.

모두가 함께 즐기고 감상할 수 있었던 화단이 이젠 흉물에 가까운 몰골이 돼 버렸다. 화단을 보호하기 위해 조금 돌아 다녀야 한다는 약속을 깨고 몇몇 사람이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몇 걸음 내디딘 결과가 아파트 모든 주민에게 피해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을 나 혼자만의 이익을 위해 어길 경우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교과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 주거 형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아파트는 페어플레이의 기본을 배우는 교육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페어플레이는 혼자 하는 게임(생활)에 적용되는 규칙이 아니라 상대방(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적용되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페어플레이가 제대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선 화단 문제의 경우 사람들이 보행하기 편리하도록 화단을 가로질러 오솔길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맞도록 조경을 꾸미는 방법이 있다. 먼저 구성원들이 편리하게 생활하며 지킬 수 있는 규칙을 만든다는 의미다. 페어플레이의 기본은 누구나 수긍하고 지킬 수 있는 규정을 담고 있을 때 빛이 난다. 짧은 점선을 그리지 않아 교통법규를 위반하게 만드는 부실한 교통시설물이 곳곳에 산재하는 한,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도 또 다른 예가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구성원들이 정해진 규칙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을 때 잠시 동안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포함한 구성원 전체에게 피해와 불편을 끼치게 된다는 점을 알게 하고 그에 상응하는 벌칙을 주는 방법이다.

아파트 생활은 상하좌우로 벽 하나를 두고 남과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불편한 경우가 많다. 앞서 예로 든 화단뿐만 아니라 소음과 진동, 냄새, 주차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생활 속의 다툼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와 남(이웃)이 다르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동반자임을 깨닫는다면 아파트 생활에서도 페어플레이 정신이 꽃필 것으로 기대한다.

이상태 화가·한국문인화 연구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