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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눈]양건/양심적 병역거부에 관용을

입력 | 2002-03-10 18:36:00


“헌법이라는 별자리에 하나의 ‘붙박이 별’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국가기관도 정치나 민족, 그 밖의 모든 의견에 관한 문제에서 무엇이 정통이라고 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시민에게 그 믿음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시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4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한 판결에서 잭슨 대법관이 쓴 이 한 구절은 개인존중과 사상의 자유 원리를 잘 드러내 준다. ‘여호와의 증인’ 교파의 신도인 바네트 자매는 교리에 반하는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성조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퇴학당했다. 대법원은 이 퇴학처분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보다 3년 전, 거의 똑같은 내용의 사건에서 합헌이라고 했던 선례를 뒤엎은 것이다.

▼미 ˝국기경례거부,위헌 안돼˝▼

위헌 판결이 내려진 6월 14일은 국기제정일이었다. 잭슨 대법관은 이 문제가 ‘종교의 자유’ 문제를 떠나 ‘사상표현의 자유’의 문제라고 보면서 헌법의 권리장전은 변전하는 정치적 논쟁이나 다수결을 뛰어넘는 원리임을 갈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국기경례 거부로 인한 퇴학처분을 합헌이라고 보았다. ‘종교의 자유’ 역시 그들이 재학하는 학교의 학칙과 교내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논지는 우리 법원에 일관돼왔다. 이 사건에서와 같은 교파에 속하는 신도들의 병역거부가 문제된 1969년의 판결에서 우리 대법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상의 결정’으로 군복무를 거부한 행위는 응당 병역법의 규정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되며, …논지에서 말하는 소위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에서 보장한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올 1월 말, 우리 법원의 풍토에서 보기 드문 한 결정이 내려졌다. 병역법에서 입영거부자를 처벌하면서 ‘양심적, 종교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아무런 예외조치를 두지 않은 것은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 심판을 제청한 것이다.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의 이 결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이른바 양심적,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의 경우에는 헌법상 기본적 의무로 되어 있는 ‘병역의 의무’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적 기본권인 ‘사상 양심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어, 그 양자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양자를 적절히 조화 병존시킬 필요가 있다. …현역입영 거부자 처벌규정이 양심적 종교적 병역 거부자에게 아무런 제한없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병역의 의무’만을 완전히 이행시키는 대신 ‘사상 양심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는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양심적, 종교적 병역 거부의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병역면제 법제도의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기본 입장은 양심을 이유로 하는 병역면제가 헌법상의 권리로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단지 법률상의 은혜로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현재 여러 선진국을 비롯해 상당수의 국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고, 최근 대만에서도 이런 입법을 도입했다고 전한다.

유엔 인권위원회도 양심적 병역 거부의 법제화를 권고하고 있다. 병역면제를 인정하더라도 집총 대신 대역(代役)을 부과하는 것이 보통이며, 독일 기본법은 집총 병역 대신 대역 부과를 명시하고 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의 결정도 대역 부과의 적절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입영거부 매년 600명▼

여전히 냉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생각하면 병역 문제는 민감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 문제를 새로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종교적 입영 거부자에게는 통상 징역 3년의 실형이 내려지고, 매년 그 해당자가 6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단적인’ 극소수만의 문제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양심적, 종교적 병역거부의 문제는 특정 교파 신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는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태도를 상징한다.

미국식 개인주의가 결코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도 너무 무겁다. 이제 우리 사회도 좀더 관용적인 자세를 배울 때가 되지 않았는가.

양건 한양대 법대 학장·헌법학